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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Feb 13. 2022

보리밟기를 해야 할까 보다

지난 1월 28일 분리수거장에서 득템 한 보리의 성장 과정이다.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니 옛말이 되어 버린 듯한 보리밟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보리밟기란 겨울철 웃자란 싹의 성장을 더디게도 하고 언 땅 위로 솟아오른 보리 뿌리를 다시 땅과 밀착시켜 줌으로써 보리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보리는 우리 식탁의 주요 곡식이 아니다. 몸에 좋다는 보리 아니라도 우리의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음식의 식재료가 지천이다. 이와 함께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던 보리밟기는 사라졌다. 보리밟기라는 단어 자체가 사전 속에나 들어 잠들게 될지도 모른다.





1월 28일, 보리 씨앗 물 불림 한나절. 서너 시간 정도는 물 불림을 했던 듯하다.


1월 28일


하루 서너 번 물을 뿌려주며 지켜보았다. 이틀 후인 30일 미세한 하얀 실뿌리가 나오고 실뿌리 반대쪽으로는 하얀 점 같은 것이 보였다. 그러나 푸른 기운은 보이지 않아 잘못된 씨앗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더 이상 성장이 없으면  버려야겠다 생각하며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몇몇 씨앗에서 미세한 푸른 기운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설 명절을 맞아 집에 온 큰 딸에게 보리 씨앗을 심게 된 과정부터 현재 상태까지 일사천리로 보고했다. 딸은 엄마 이야기이니 즐거운 듯 들어줄 뿐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귀여운데."


일단 시작한 푸른 기운은 기세도 좋게 잘 자랐다. 설 연휴 마지막 날, 그러니까 새싹 파종판에 올린 지 5일째인 2월 2일의 모습이다. 푸른 떡잎은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느낌이지만 제법 탄탄한 느낌을 준다. 짝이 없는 외떡잎이기에 홀로 삶을 버텨낼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 그래서일까. 짝이 있는 쌍떡잎에 비해 쉽게 부서지지 않을 힘이 느껴진다. 첫 싹이 이렇듯 단단해야 다음에 나올 본잎은 첫 싹을 믿고 세상을 디딜 수 있으리라. 


보리알 위쪽으로도 간간이 보이는 뿌리는 모두 파종판 아래 작은 구멍을 향해 내려갔다. 관찰을 좋아하거나 좋아하게끔 하고 싶은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보리 씨앗을 키워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향일성이니 배일성이니 하는 식물 성장 관련 용어를 눈으로 보면서 관찰하고 관찰일기도 쓰며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위쪽으로 자란 새순과 아래쪽으로 자란 뿌리의 길이가 거의 비슷해 보인다.


2월 2일
2월 2일


2월 2일 오후, 새순은 더욱 푸르고 길게 자랐다. 한 번 푸른 것은 오래도록 푸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들판의 봄을 미리 느껴볼 수 있게 하는 보리 씨앗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예전에 보리 씨앗을 키울 때와는 또 다른 벅찬 느낌이다. 그때에 비해 내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나의 삶은 점점 짧아지는 중임을 보리순이 자라는 데서 은연중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2월 2일




그리고 오늘 2월 4일 아침이다. 


어제저녁부터 이 외떡잎식물의 외떡잎 위쪽에 수상쩍은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잎도 크고 성장세도 빠른 옥수수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기운을 알 수 있다. 물론 수상쩍지도 않다. 하지만 집안에서 물가꾸기로 키우는 이 보리는 가느다란 잎도 잎이려니와 시력도 좋지 않아 돋보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다.


그러던 것이 위쪽 잎을 살짝 벌리고 있다. 다른 새 잎을 보여주겠다는 신호다. 야호. 사진을 찍고 확대해서 보니 대부분이 새 잎을 낼 준비를 마쳤다. 물을 듬뿍 뿌려주었다.


2월 4일
2월 4일
2월 4일
2월 4일



이렇게 새싹을 이용할 목적으로 키우는 보리는 밟아줄 필요가 없다. 새순을 잘라 샐러드로 만들어 먹거나 새순을 말려 가루로 만들어 이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내 욕심은 물가꾸기를 통해서 보리 씨앗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도 보리 씨앗 하나가 썩어 여러 개의 보리 씨앗을 거두고 싶은 것이다. 춥지도 않고 언 땅도 아니기에 보리 뿌리가 들뜰 리는 더더욱 없는 보리의 성장을 바라보며 어려서 보았던 보리타작을 그려본다.


잎 두엇 더  나올 즈음 보리 새싹을 손으로라도 눌러주어야 할 모양이다. 지금 이 모습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지나치게 빨리 우거지지는 말라고 말이다.





다른 목숨 가진 것들도 그렇겠지만 사람은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우며 자라던 시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 모습 또한 과거 내가 성장하던 시절을 닮아 있는 듯하다. 그때는 막연했던 것이 오늘 구체적으로 모습을 구현한 것 외에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어느 시기까지는 성장한다. 보리도 그렇다. 보리밟기를 해 주든 그렇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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