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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Mar 27. 2022

온통 약으로 무장 또 무장하는 시대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지난 월요일부터 알바 중이다. 학교 급식 시간 방역 알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1시 50분~ 오후 1시 50분, 1일 2시간씩 여름방학 시작 전까지다. 웬일로 내게까지 찾아올 알바가 남아 있었는지 신기하고 또 신기하여 딸들에게 자랑했다. 하필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정점을 향해 가파른 속도로 치닫고 있어 신기한 반가움과 함께 걱정도 찾아들었다.


소식을 들은 큰딸이 달려왔다. 마스크 착용 전 코 속에 뿌리라며 약품을 건넸다. 딸에게 고맙고 차만 타면 금세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그러면서도 온통 약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안타깝고 안쓰럽다.





12시부터 시작하는 학생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수저를 나눠주고 식사가 끝난 후에는 가림판과 식탁, 학생들의 손길이 닿는 의자 등받이를 닦는 일이다.


학생들의 점심 식사가 얼추 끝나고 나면 알바생의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으며 함께 일하는 젊은 두 엄마와 몇 마디 나눴다.

"누가 해 주는 밥이 정말 맛있어요, 그쵸?"

"맞아요, 맨날 밥을 해서 대접하기만 했지 누가 만들어주는 점심식사를 이렇게 날마다 대접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것도 영양사님의 꼼꼼한 영양 세트 식사를 말예요."


그이들도 나도 이런 알바는 처음이다. 코로나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코로나가 우리 사회의 일자리까지 바꾸어 놓았구나 싶다. 학생들 식사가 대강 마무리될 즈음이면 우리도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알코올을 뿌려가며 가림판과 식탁, 의자 등받이를 닦는다. 닦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코로나와 관련한 일에 참여하리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이제 그 변이종인 오미크론과 델타크론을 넘어 어제는 영국발 스텔스오미크론이라는 변이종까지 생겨나 크게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산 넘어 산이다. 곧 정점을 찍고 수그러들 거라던 보도는 다시 믿을 수 없는 헛소리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부디 이런 내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로 하는 약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요한 장비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코로나 예방을 위한 최전선을 맡고 있는 마스크를 쓰기 전에 뿌려야 할 약까지 등장했다. 약병을 들고 뿌릴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 온통 약으로 무장한 나는 언제 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이 약을 뿌리기 전에 뿌려야 할 약이 또 등장하는 건 아닐까?





잠시 망설이다 코 속에 약을 뿌렸다. 양쪽 코 속에 한 번씩 치익 치익 소리가 나도록 바쁜 딸이 엄마를 위해 들고 달려와 준 정성을 뿌렸다. 정성이 병의 방패가 되어주리라는 확신을 갖기로 했다.


이 스프레이 약 덕분일까, 아무 탈 없이 일을 잘 끝내기 바라는 딸의 마음 덕분일까. 큰 이상 없이 하루 두 시간의 알바를 잘 수행하고 있는 편이다. 쓰지 않던 근육을 한 시간 정도 쓰고 난 첫날은 주로 오른팔을 사용했음에도 왼팔이 아팠고 머리가 어딘가 닿기만 하면 잠이 든다는 말을 깊이 공감할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잘 흘렀다.남편의 귀가 시간을 기다리며 만 보 걷기로 두 시간씩을 보내지 않아도 걸음수는 만 보 그 이상을 훌쩍 넘는다. 약간 삐끗했던 왼쪽 발목도 다시 원위치를 찾았고 감기 증상은 환절기를 맞아 도진 비염임이 판명되었다. 


이 스프레이 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또 다른 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수저를 받아드는 학생들이 인사를 건넨다. 남편 출근 후에는 하루 종일 대화 상대가 없어 베란다 화초들에게 일방적으로 건네던 내 혼잣말이 대화 상대를 찾았다.

"네, 안녕하세요."

"네, 맛있게 드세요."


수저를 나눠주고 식탁과 가림판, 의자 등받이를 닦으며 기원한다.

'이 힘든 시기가 부디 빨리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이 시기는 물론 이후 언제까지나 이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과 조리사님들, 그리고 우리 알바생들 모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더는 약이 필요 없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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