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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01. 2022

토마토에게 반하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토마토 꽃이 쉬지 않고 피고 지고를 계속한다. 우리집 겨울 베란다가 토마토가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는 상황인가 싶다. 또한 빛과 물과 공기가 있고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면 어디서든 살아가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수차 재확인하는 순간들이 즐겁다. 아래쪽 2화방까지는 겨울 동안 피었던 꽃이 다 지고 열매 네다섯 개씩을 매달고 있다. 위쪽으로는 5화방째의 꽃들이 피는 중이다. 토마토 꼭지에 엷은 진초록 줄무늬가 선명한 것으로 보아 큰 토마토일 거란 내 예상이 맞을 듯하다.


방울토마토인들 누가 뭐라랴. 어느 날 씨앗 떨어진 자리에서 싹을 틔우더니 때가 되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것도 한겨울부터 봄에 이르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는 데 마음이 머문다.






화분 정리를 하면서 발견했다. 뭐지?


뿌옇게 변한 투명 테이프가 가느다란 철사 지지대와 제법 관목 줄기처럼 굵어진 토마토 줄기를 함께 감싸고 있다. 그래, 지난 늦가을 수분 증발 방지를 위해 화분에 비닐을 씌울 때 잘못 건드려 토마토 줄기가 똑 부러졌었다. 부러진 토마토 아랫부분과 윗 가지를 잘 맞추고 지지대를 세운 다음 투명 테이프를 둘러 붙여 주었다. 그때 자꾸 어긋나려는 토마토 윗 가지에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여기 붙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통사정을 했었다. 부러진 자리를 어렵사리 붙이고 나자 온몸에 진땀이 흠뻑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 토마토 꽃이 피고 지는 동안에는 물론 열매가 나름대로 주렁주렁 자랄 때까지 테이프를 붙여 주었던 기억은 까맣게 사라지고 없었다. 투명 테이프는 진작에 벗겨 주었어야 했는데 상처가 다 아물고도 제법 성장하기까지 답답했겠다. 말은 해야 맛이다. 늦었다고 쑥스럽다고 입을 닫아거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다. 늦게나마 한 마디 건넨다.

"고맙다."


투명 테이프를 벗겼다. 뼈가 어긋나 아문 자리처럼 아랫부분에 비해 위쪽이 많이 굵어져 있다.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추운 날 나름대로 몸부림을 쳤을는지도 모른다. 투명 테이프 보시로 다 끝났다고, 어쩌면 내 할일은 다 했으니 죽어도 별수없지 식으로 방치하고 말았을 내게 보란 듯이 살아 주었다.






이런 와중에 토마토 뿌리는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을까. 비스듬히 누운 토마토 뿌리와 줄기 경계쯤인지 토마토가 또 새순을 내고 있다. 역시 잘라내지 못하고 또 그대로 둔다. 토마토가 열린리고 있는 원줄기의 키가 베란다 천정에 닿을 무렵이면 이 새순도 제법 자라 꽃봉오리를 맺고 있으리라. 그때쯤 원줄기를 잘라내고 이 새순을 키워도 되겠다.




토마토 곁순은 잘라 잠시 물에 담갔다가 흙이 담긴 페트병에 꽂아두었다. 며칠 시름거렸지만 이내 활기를 찾아 싱싱하게 잘 자란다. 



제법 잎 모양새를 갖춰가는 홍산마늘 주아들 사이에도 잘라낸 토마토 곁순을 꽂아두었다. 며칠 사이 곁순들도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네가 토마토라는 건 냄새 풍기지 않아도 알아보겠다. 땅속에선 홍산마늘 주아가 자란 통마늘이 하늘에선 토마토가 열릴 날을 상상하는 야무진 꿈을 꾼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이 작은 내 시도가 언젠가는 결실은 맺을 날이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마음이 살짝 들뜬다. 산다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본능이다. 살아야 한다, 그래야 죽을 가치도 있다.


사는 날 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봐야 안다, 그래야 죽음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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