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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20. 2022

행복 세 그루가 3천 원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집으로 오는 길, 그 트럭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에서 내려 오던 방향으로 열댓 발자국만 가면 만나곤 하는 부채과자 등을 파는 트럭 말고 작은 꽃 화분만 빼곡히 싣고 있는 그 트럭 말이다. 부채과자 트럭과 꽃 트럭은 번갈아가며 횡단보도가 있는 그 자리에 서 있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부채과자나 꽃을 그 트럭들에서 사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특히 그 꽃 트럭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화원에 들러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다. 눈에도 삼삼한 지난 봄 보내 버린 아이들을 적어도 몇 포기는 데리고 와야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더욱 편안하고 기운도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 같은 일의 반복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두 시간의 노동이 주는 강도가 어떤 날은 특히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오늘은 주말 시작이니 몇 포기 사 들고 가 따스한 베란다 햇볕 아래서 주거니 받거니 봄날 이야기나 나누며 분갈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몸은 집으로 곧장 가서 쉬라고 쫑알거린다. 


함께 일하는 젊은 엄마들도 입을 모은다. 

"수저 나눠 주고 점심 먹고 식탁에 알코올 뿌리고 닦는 게 뭐라고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겨우 애 학원 보내고 나서 뒹굴거리다 보면 저녁이라니까요." 

나 역시 알바 일을 시작한 첫 일주일은 물론이고 한 달이 된 지금까지 가끔 누워서 1시간은 쉬어야 몸이 풀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영락없이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어 가능하면 눕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컴퓨터 앞에서 꾸벅거리면서도 말이다.





버스가 바로 도착했다. 짧은 다섯 정거장을 가는 동안 버스는 텅텅 비어 있고 나는 내릴 때 편하게 문 바로 앞 좌석에 앉는다. 두 손을 깍지 끼어 뻐근한 몸을 늘려본다. 이 일을 하기 전에 비해 손 피부가 더 보들보들하다. 물 만지는 일도 아니거니와 일하는 동안은 위생상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있으니 수분 유지가 잘 되어서인가 보다. 우리 사 남매를 키우느라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일회용 장갑 같은 건 세상에 나와 있지도 않았던 시절 친정어머니의 잔 가시 돋아난 듯 거친 손이 오버랩 된다. 


내가 내릴 곳에 도착하기 직전 버스 앞 창으로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만났으면 바라던 그 트럭이다. 고맙습니다. 이제 내 맘에 드는 화초를 만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화초를 집어 들고 또 고맙습니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봄꽃을 구경하고 구입하면서 꽃 이름을 묻고 답하고 물은 어떻게 주어야 하느냐는 등 꽃 트럭 주인과 꽃을 사려는 이들의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뜨는 대화에서도 4월 햇살을 받아 연둣빛 싹이 트는 것만 같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화초를 몇 가지씩 담아 들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말투로 보아 탈북민이구나 싶은 여성은 오래도록 화초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잊지 않으려는 듯 되새기고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이 지역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더구나 이땅 북쪽에서 살았을 뿐인 저이가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 더 곱고 풍성한 화초들을 만났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포기 한 화분당 2천 원이던 화초들은 2자를 3으로 고쳐 쓴 3천 원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그중 두 번의 봄에 걸쳐 꽃만 보고 보내 버린 커피를 살폈다. 세 포기에 3천 원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씨앗 발아부터 시작하여 키우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하지만 커피는 씨앗 발아가 매우 더딜 뿐만 아니라 발아 중 썩어서 그대로 보내버렸던 기억도 있다. 이 커피나무들은 벌써 한 뼘씩이나 자란 상태이니 잘 키우면 내년봄엔 꽃을 볼 수도 있겠다.


꽃에 대해 질문 중인 그녀는 쉬지 않고 이 꽃 저 꽃에 대해 묻고 있었고 꽃 트럭 주인은 귀찮은 내색 없이 다른 손님을 응대하는 틈틈이 답변을 이어갔다. 커피 화분 하나를 들고 있는 내게는 말없이 검은 비닐봉지 입구를 벌리며 다가왔다. 

"3천 원."


묻지 않는 이에게는 왠지 불친절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몇 가지 일년초도 더 고를까 하다 접기로 했다. 지극히 소극적인 삐짐을 알아차릴 리 없는 꽃 트럭 주인은 천 원짜리 석 장을 받아 들고 말없이 돌아서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그이에게로 다가갔다. 들을 때는 다 기억할 것 같아도 한 번 들어서는 다 기억할 수 없는 꽃들의 생태에 대해 꽃을 살지도 모르는 손님과 꽃을 팔려는 주인 사이의 대화가 왠지 시들한 느낌이 드는 건 속 좁고 몸도 피곤한 내 기분 탓이었으리라.






물론 커피나무 세 포기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서면서 기분은 말끔해졌다. 더 샀더라면 몸만 피곤할 뿐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없던 기운이 솟는 듯하다. 손만 씻고 커피나무 심을 화분과 화분 둘 자리를 찾았다. 낮게 자라도 좋은 명월초 화분들 중앙에 심기로 한다. 지난번 두 커피나무를 꽃만 보고 보내게 된 이유가 창가에 둔 채 겨우내 문을 조금 열어둔 탓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커다란 명월초 화분 가운데 커피나무를 심고 겨울이 되면 자리를 옮겨 동해 입지 않게 보호해 주면 되겠다. 


작은 포트에서 커피나무를 꺼냈다. 데리고 오길 잘했다. 뿌리가 서로 엉길 정도로 잘 자라 있다. 가능하면 뿌리를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의 수고를 해야 했다. 동물을 입양하는 이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겠구나 싶다.


명월초 화분 중앙을 화분용 스푼으로 깊게 파고 커피나무를 한 포기씩 심었다. 한 포기 심을 때마다 스스로 물었다. 얘는 분명 나무이니 처음부터 한 그루라고 해 줘야 격에 맞지 않을까를 말이다. 어리고 작아도 그루가 포기에 비해 왠지 더 나무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내 편견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커피나무가 자리를 잡고 새순을 내밀 때쯤이면 깡총 잘라낸 명월초도 새순을 내고 있겠다. 명월초들을 뽑아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 한 뙈기 밭 모양으로 다듬고 나면 올 4월도 다 가겠다.  


나만이 품은 행복 세 그루를 심고 나니 언제 피곤했었느냐 싶어진다. 3천 원의 위대한 힘이다. 꽃 트럭 주인이 친절했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지금쯤 분갈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친 몸으로 그의 친절함을 탓하고 있을 것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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