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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28. 2022

2022년 첫 텃밭 나들이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밭 경계에서 자라고 있는 벚나무도 꽃이 피었다 지는 중이다.

2022년 첫 텃밭 나들이다. 최근 마련한 이웃의 텃밭 구경 가겠다고 미리 약속 잡아 놓은 남편이 우리 텃밭과 아내에게 미안해서 선수친 덕분이다. 일찍 나서야겟다고 별러 준비했으나 7시 반이 넘어서야 출발했다. 


삼패 사거리 쪽으로 접어들면서 만나는 배밭에서 흐드러진 배꽃이 나를 반긴다. 더러는 벌써 지고 있는지도 모를 배밭 봄 풍경이다. 언제나 가슴이 떨리는 배 꽃무리에 마음부터 환해진다.



양수대교를 지나도록 안개가 끼었는지 뿌옇던 먼 산야가 제법 말끔한 얼굴을 드러냈다. 양수리를 지나 탁 트인 한강변으로 접어들었을 땐 왠지 오늘은 저 멀리 달리는 버스 뒤꽁무니를 오래도록 따라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적한 아침 길을 여유있게 달리고 싶은 것이다. 가로수 벚꽃은 더러는 남아 있기도 하지만 거의 시들었거나 떨어진 시기다. 봄볕이 좋아 일찍 꽃이 피었다가 살랑거리는 강바람에 꽃잎도 빨리 졌으리라.


벚꽃비 내리는 날에도 무성한 푸른 잎이 그늘을 드리운 날에도 낙엽이 이리 저리 쓸리던 날에도 주말이면 달리던 날들을 떠올리며 지금은 남아 있는 꽃들로 만족한다. 이 길이 완성되기 전에는 수양버들 늘어진 좁은 2차선이 전부였었다. 주차장처럼 변해 버린 자들 사이에 끼여 옴쭉달싹 못하면서도 텃밭 마련했다는 즐거움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탓밭 마련 초기에 비하면 즐거움의 신선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수양버들 대신 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덕분에 떨어진 즐거움의 신선도를 떠받쳐 주고는 있다.






 

밭으로 드는 길 쪽으로 접어들었다. 그늘진 자리에 지지 않고 남아 있는 벚꽃들 덕분에 환하게 빛나는 길이다. 아침잠 많은 남편이 서둘러준 것도 있고 주말 이른 아침 치고는 차가 많지 않아 평소 1시간 걸리던 거리를 40분 만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면 하루를 얼마나 마디게 쓸 수 있는지 모른다. 남편이 늘 이렇게 서둘러 주기를 바란다.


밭으로 가는 길 양 옆은 온통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산자락마다 하얀 길이 구불거리고 산 중턱까지 집들이 들어섰다. 내 눈엔 가파르기 그지 없어 보이는 저처럼 높은 자리에 축대를 쌓고 경사 30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 비탈진 길을 구불구불 이용해 출입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듯 싶다. 서울 외곽 중 대단지 아파트 아닌 지역으로는 꽤 잘 나가는 지역 중 한 자욕아 여기라더니 땅 값이 비싼 이유가 되기도 하겠다.


우리 밭 입구 작은 땅들도 더 작게 쪼개서 축대를 쌓아 집 지을 준비를 마쳤다. 상전벽해라는 말은 예전에도 이런 일이 행해지고는 했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언젠가는 오늘과 같은 날이 오리라는 예측을 한 사람이 있었거나.






밭 경계에서 자라고 있는 벚나무도 꽃이 피었다 지는 중이다. 자두 꽃도 피었다 지고 있다. 향기는 모두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꽃보다 수명이 짧은 꽃 향기가 더 아쉬운 날이다. 한창 향기가 좋은 때는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코는 자두 꽃에 꽂아두고 오고 싶을 정도로 자두 꽃 향은 진하고 달콤하다. 그러니 벌레들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는 꽃이기도 하다.


살구와 매실은 열매를 몇이나 달아줄지 꽃잎은 낱장으로 몇 장만 남아 있고 잎들만 삐죽거린다. 정염의 명자꽃도 올해는 이미 절정이 지난 후다. 아주 져 버리지 않아 얼굴 마주 대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상사화는 잎만 무성하다. 잎이 진 후에야 단아한 분홍 꽃을 보여주는 가을 무렵 시기 놓치지 않고 와서 볼 수 있으려나 싶다. 감나무 아래 소담하게 심었던 삼잎국화가 어느 새 세력을 뻗어 상사화 사이사이까지 번졌다. .

그만 번져도 된다는 내 부탁은 들었는지 들었어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상사화 앞쪽까지 번졌다.


이웃한 보리수는 지난해 지나친 가지치기 탓인지 제법 굵은 원줄기는 고사하고 밑동에서 어린 새 가지들이 삐죽삐죽 자라고 있다.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감사하다.






나눔 받은 홍산마늘 주아 자라는 사진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안 보인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지만 이웃해 심은 마늘은 잎도 싱싱하니 내 깜냥으로는 잘 자란 편이다. 왕겨 구하기가 쉽지 않아 베어 두었던 마른 풀을 덮어 주었음에도 동해 입지 않고 잘 자랐다. 비가 조금만 와 준다면 마늘 굵어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텐데 당분간 비가 없을 거라는 예보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가뭄 때문에 하늘에 대고 기원도 하고 원망도 하는 농부들을 본다. 손바닥보다 작은 땅에 몇 톨 되지도 않는 마늘을 심어 놓고도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처럼 간절한에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가늠할 나이가 되었다.



벚나무 그늘 아래 내가 좋아하는 나물 영아자가 몇 해 사이에 많이 번졌다. 나 먹기에는 차고 넘칠 양이다. 영아자는 약간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한다. 잘 씻어 날것째로 초간장 양념에 무쳐내면 고기와도 잘 어울리는 나물이다. 처음 영아자 나물을 맛 보았을 때의 맛과 식감은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난 나물이 있었다니. 내가 알고 지내는 이들에게 나는 영아자 찬양자가 되었다.


그리고 영아자에게서 받았던 충격은 새로운 나물을 하나 더 만날 때마다 늘어갔다. 뽕잎 나물이 그랬고 다음으로는 다래순 나물이 그랬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나물로 화살나무 순이 있다. 기다려, 화살나무 순, 내가 간다.



너풀거릴 정도로 크게 자란 영아자는 씻어서 두어 번 잘랐다. 양이 많아 두 번에 나눠 먹기로 했다. 미리 양념을 뿌려두면 숨이 죽어 식감이 살지 않으므로 식탁에 내기 직전에 양념을 뿌리면 더 맛나게 즐길 수 있는 나물이다.



달래가 온 밭을 뒤덮었다. 큰 것들만 캐려니 뿌리 근처에서 끊어지고 만다. 깊이 파서 한 웅큼 들러낸 다음 알뿌리 큰 것들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다시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 물론 씻을 때 떨어져 나오는 어린 달래 뿌리 역시 흙 속에 다시 묻어주면 달래 밭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산을 깎아 집터로 다듬으면서 이웃 땅에 자라던 두릅들은 샤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 눈에 띄는 두릅나무들은 가시는 그대로인 채 누렇게 마른 줄기만이 볕을 맞으며 서 있다. 우리 밭에 자라고 있는 손가락 두세 마디 만한 어린 두릅 세 개를 땄다. 우리 밭에 자라는 두릅이지만 남의 밭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부지런한 이들 손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다니러 오지 않는 한 우리 차지가 될 리 없는 두릅이기도 하다. 올봄엔 두릅 세 개만으로 만족하자.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물도 챙긴 후 서둘러 씨앗 묻을 자리를 잡았다. 열매 마, 생강, 울금, 단호박, 오이, 여주 등을 심었다. 밭을 일구는 일은 오늘도 남편 몫이다. 남편이 밭을 일구는 동안 작물과 거리를 두고 리아트리스, 양귀비, 세이지 씨앗도 묻었다. 작물을 심어두고 자주 올 것도 아니니 꽃들도 베란다가 아닌 자연 속에서 함께 자라 제 세상을 만끽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세 시간 정도 일을 하니 슬슬 배가 고프다. 울타리 보수는 다음으로 미루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서너 시간 사이에 다양한 일을 했다. 울타리 보수를 제외하고는 텃밭에 필요한 봄 일은 다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집에 와 점심을 먹고 바로 나물 정리에 들어갔다. 커다란 방수 천에 나물을 쏟았다. 분류하고 털어내고 다듬고. 다 다음은 후에는 좋은 것 있으면 우리 부부가 생각난다는 이웃에게 달래와 삼잎나물, 오가피 순을 조금씩 덜어 나눠 드렸다. 


이런 날 저녁식사는 당연히 비빔밥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나물을 두고 비빔밥 아닌 다른 것을 청한다면 봄과 봄나물에 대한 크나큰 실례다. 영아자와 달래는 날것인 채 간장 양념으로, 어린 머위는 데쳐서 된장에, 그리고 다른 나물들은 모두 데쳐서 고추장 양념으로 무쳤다. 쓴맛이 강해 꺼리는 오가피 순도 이 시기에는 초고추장에 무치면 없는 입맛은 살려내도 있는 입맛은 배가시키는 좋은 나물이다.


삼잎나물은 다른 나물의 양이 너무 많아 데쳐서 말리기로 하고 몇 개 안 되는 고사리 역시 삶아서 세탁소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밥 한 공기에 오늘 캐고 꺽어온 나물 무침을 조금씩 넣고 고추장 한 술, 참기름 몇 방울 넣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다른 때는 서로 한 숟갈이라도 덜 먹으려는 부부가 오늘은 한 숟갈 더 먹겠다고 숟가락 싸움을 했다. 볼이 터져라고 입 안 가득 비빔밥을 집어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입이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다. 맛있다.





망가진 내 텃밭 울타리는 언제 고치려나. 깔끔하게 정리된 남의 텃밭 구경하고 오면 남편 마음도 달라지려나. 텃밭 선배랍시고 텃밭 초보자인 이웃 텃밭 구경간 길에 이것저것 아는 체도 좀 하면서 즐기고 오길 바란다. 한창 일할 철에 남의 텃밭 구경에 참견까지 하고 왔으니 자신의 텃밭에 미안한 마음이 들 테다. 며칠 내로 우리 텃밭 가자고 남편이 또 내 손을 잡아끌 날을 기다린다.


오늘처럼 벌레도 잠잠하고 바람도 선선한 몇 주 내에 텃밭 다녀오자는 남편의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든 푸성귀 모종이 땅 기운을 받아 살아난다는 오월 초순이 지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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