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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ug 27. 2022

할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어제는 많이 덥고 피곤했다. 찬물 샤워가 전혀 불편하지 않은 걸 보면 한여름이 맞다. 뉴스에 무더위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이제 7월 초인데 벌써 3명이라는 소식이다. 뉴스를 보고 10 시 반경 일찍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2시. 조금 더 자려 했으나 뒤척이다 결국 일어났다. 


둘레길을 걷기에도 너무 이른 시각이다. 창밖으로는 드문드문 택시가 지나간다. 너무 늦은 귀갓길이거나 지나치게 이른 출근길일 수 있겠다. 요즘 들어 눈에 뭔가 낀 듯 시야가 자주 뿌옇다. 티브이 광고에 나오는 그 질병 증상일지도 모른다.

"안과 안 가셨어요?"


연중행사인 안과 정기 검진이 다음 주에 예약돼 있지만 가고 싶지 않다. 1년 미룰까? 간호사는 몇 개월만 미루자 하겠지.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많이 허투루 써 대는 것이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살기 위해 검진이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 역시 적다고는 할 수 없겠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평균수명이 늘어날수록 병원에 의존해야 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하다고 한다. 사귀다 보면 동의하고 싶지 않은 이웃의 그 이웃에 대한 험담에도 모질게 자르지 못하고 잠시나마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너무나 아까워서 내가 당신 이웃에 대한 당신의 험담을 들어준 데 대한 비용을 지불하라고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새 한 마리가 방금 일어났다는 듯 두어 번 길게 기지개 켜는 소리로 울어댄 다음 이내 제 노래를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한 옥타브 높게 시작한 노래는 끝날 때까지 변함이 없다. 근 두 시간을 혼자 노래했다. 다섯 시가 넘어서야 얼마쯤 떨어진 듯한 곳에서 다른 한 마리가 화답을 한다.


몇 번 더 노래를 주고받는 듯하다 사라졌다.삐이익 삐이익 우는 새들이 그 뒤를 메웠다. 


아침으로 먹을 방울토마토 몇 개를 식촛물에 담갔다. 어제저녁 만들어둔 빵은 달걀을 하나 더 추가했을 뿐인데 훨씬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다.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아침식사 전 둘레길 한 바퀴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둘레길에는 이른 시각에만 볼 수 있는 얼굴들이 벌써 나와 열심히 걷고 있었다. 이제 가볍게 '안녕하세요'나 눈인사를 나눌 정도인 이들과의 아침 만남이 반갑다. 5시 반, 알람이 울었다. 둘레길을 한 번 돌았을 뿐인데 갑자기 미칠 듯 졸음이 몰려왔다.


졸음 속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말했다. 

"고모, 도와주세요."

그는 어제 내가 초등 2학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명의의 땅 현재 점유자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6월 하순경 한 군청으로부터 내가 그 땅의 이해관계인이라며 등기신청인이 있으니 이의가 있으면 이의 신청서를 보내라는 문서를 받았고 그에 따라 나는 이의신청서와 이의신청 사유서를 보냈으며 군청 직원과 통화 후 개인 정보를 알려주어도 좋다는 데 동의했다.


어쩌면 지난밤 길지 않은 몇 시간의 수면은 스스로 내게 조카라는 이 사람과의 통화 내용을 곱씹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몽사몽 간에 집으로 올라와 자이에 누웠다. 뒤척거리다 한 10여 분 단잠을 잤나 보다.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둘레길을 걸었다. 거뜬하다. 짧은 단잠이 준 큰 선물에 감사한다. 짧은 단잠에 빠지기 전 생각이 정리되었나 보다.


할아버지께서 나와 내 형제들에게 남기신 땅이라면 그렇게 크지도 가격이 많이 나가지도 않는 시골 땅이지만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생각잖은 그 유산 상속이라는 일이 내게도 일어날 큰 사건이다. 하지만 내게 조카라는 그의 말에 의하면 그 땅은 우리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이미 처분하신 땅이며 자신이 그 땅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유산으로 물려받아 자신의 소유가 된 그 땅을 60년 넘도록 경작하면서 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않았느냐눈 점이었다. 더구나 그 땅의 내역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계셨을 내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왜 감감무소식이었다가 아버지까지 돌아가신 지금에야 일을 진행하려는지 물었다. 소유권이전등기를 아직까지 하지 않은 채 계약서 원본마저 분실했다며 사본만 들이대는 당신을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아무런 답변도 제시하지 못한 채 무조건 도와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내게 조카라는 그의 말이 맞다면 나이 든 어느 날 할아버지를 다시 한번 추억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이의신청서서를 취하하는 게 맞다. 할아버지께서는 그 땅으로 인한 어떤 분란도 원치 않으실 테니 말이다.


마음에서 오락가락하는 양가감정이야 인간인 이상 오래 남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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