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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ug 27. 2022

고구마 줄기 김치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이웃에서 고구마 줄기를 한 보따리 보내셨다. 마지막 남은 여름 상추 얌전한 꽁다리와 보라고추와 가지까지 깔끔하게도 보내셨다. 김장 무 씨앗 묻으러 가신 김에 눈에 띄는 대로 거둬오셔서는 모두 우리 집으로 보내셨단다. 


아, 나 지난 새벽 1시 반에 깨서 걷기도 제대로 못하고 점심 식사 후에도 비몽사몽 중인데 아무리 피곤해도 할 일 두고는 쉬지 못하는 이 성격이 정녕 문제다. 이런 내게 어쩌자고 고구마 줄기를 이렇게도 많이 보내시는가 말이다.


추석 앞두고 푸성귀가 푸성귀라 부르지 못할 정도로 귀하신 몸에 가격도 천정부지라는 뉴스가 매일 저녁 메인 뉴스에 나온다. 나눔 주신 이웃분께 무조건 감사함이 옳다. 시금치를 시金치라 부르는 2022년 여름을 살고 있음을 상기하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래, 그럼 두 번째 고구마 줄기 김치를 담가볼까? 처음 고구마줄기 김치를 담갔던 기억이 새롭다. 담그는 방법도 모르면서 일반 김치 담그듯 갖은 양념에 다듬은 고구마 줄기를 넣고 살살 버무렸다.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귀찮은 일이어서 껍질에 더 많은 양분이 있다고 치고 껍질째 담갔다. 김치를 담근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고구마 줄기에서 나온 물이 흥건했다. 주변에서 그토록 맛이 있다는 고구마 줄기 김치는 어디 가고 내 고구마 줄기 김치는 냉장고에서 얼마 간 버티다 버려졌다. 


고구마 줄기 김치는 우선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지만 다시는 고구마 줄기 김치를 담그는 일은 내 평생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내게 고구마 줄기가 왔다. 내가 고구마를 키울 때에도 이처럼 많은 고구마 줄기를 따 모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절대'라거나 '평생'이라는 단어는 특히 부정적 문장에 섞어 써서는 안 된다. 뻥 뚫린 듯한대로를 달릴 때에도 옆구리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차를 조심해야 하듯 아무리 큰 결심에도 예외라는 것이 있개 마련이다. 


블로그 이웃이신 마법님이 얼마 전 친구분께서 주신 고구마 줄기로 담갔다는 고구마 줄기 김치는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인데 지금도 입맛을 다셔질 정도로 맛나 보였다.





도전! 고구마 줄기 김치. 우선 가위를 들고 앉아 고구마 잎을 하나하나 따냈다. 집안에 앉아 고구마 잎 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뙤약볕 아래서 고구마 줄기 따 모으시느라 수고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잎을 다 따내고 고구마 줄기 껍질 벗기기에 돌입했다. 


이 많은 고구마 줄기 껍질을 언제 다 벗긴담. 고구마 줄기가 커다란 고깃덩어리처럼 생겼다면 얼마나 편할까. 사방 껍질을 단번에 벗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얄팍얄팍하게 저미면 금세 끝날 일이다. 하지만 고구마 줄기는 처음부터 얇게 저며져서는 상처조자 매끈하게 나은 상태로 자랐다. 천 개도 넘을 것 같은 이 작은 고구마 줄기 껍질을 일일이 벗겨내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시간적으로나 노동력으로나 지극히 경제적이지 못하다. 고구마 줄기 김치는 포기하고 껍질째 삶아 말렸다가 생선조림 아래 까는 게 낫지 않을까.


앗, 따거. 이럴 줄 알았다. 고구마 줄기를 받아든 처음 순간부터 왠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잎을 다 따낸 다음 첫 번째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려는데 고구마 줄기가 엄지손톱 밑을 찌른다. 소독약을 발랐다. 마뜩잖은 마음이 들 땐 일을 미루어야 한다. 일을 두고 못 보는 성격 탓을 할 게 아니라는 걸 살아오면서 한두 번 보아온 게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고구마 줄기에도 손톱 밑을 다칠 수 있다니. 두 번째 고구마 줄기는 조심조심 무난하게 껍질을 벗겼다. 그러나 세 번째 줄기에서 검지 손톱 밑을 또 찔리고 말았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겨서는 고구마 줄기는 김치를 담그기 전에 배배 틀리며 말라비틀어지고 말 것이다.






더운 여름 오후, 평상에 모여 앉아 가족 밥상에 올릴 반찬 생각하며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은 추억의 사진첩 속에 모셔두면 된다. 고구마 잎사귀 잘라내고 고구마 줄기 껍질 세 개 벗겼을 뿐인데 텃밭에서 종일 풀을 뽑던 어느 날의 손톱 밑처럼 손톱이 새까맣게 변했다.


암, 이건 아니지. 검지 손톱 밑에 소독약을 들이부으면서 이웃 마법님이 고구마 줄기 김치를 담그던 과정이 떠올랐다. 설익으면 김치가 질겨질 수 있으니 오래 익혀야 한다고 썼던 부분이다. 아하, 고구마 줄기 김치는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는 것은 물론 그것을 또  푹 삶아서 담그는 것이었지. 이웃의 글을 읽고도 체화되지 않은 건 경험 부족이다. 


그래서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큰 냄비에 물을 중간쯤 붓고 끓였다.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기 전에 삶거나 껍질을 벗긴 후에 삶거나 결국 익혀서 먹는 거다. 끓는 물에 고구마 줄기를 두 번에 나누어 삶았다. 마법님은 껍질을 벗긴 후에 삶았으니 한 번에 오래 삶았겠지만 나는 껍질을 벗겨야 하니 살짝 데쳐낸 후 껍질을 벗긴 후에 다시 한번 푹 익히면 되겠다. 삶아낸 고구마 줄기는 얼른 찬물에 담가 열기를 식혔다. 아차, 삶을 때 소금 넣는 걸 잊었다. 왠지 고구마 줄기가 새파랗지 못하고 거무튀튀하게 변하더라니. 오늘 고구마 줄기와 나는 궁합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지진으로 어긋난 지층처럼 뒤죽박죽이다. 궁합도 첫눈에 반한 사이라야 좋을 확률이 더 많을 텐데 이 어긋난 지층은 맞추려 애를 쓸수록 더욱 어지러워질 뿐이다.


그럼에도 고구마 줄기를 삶기를 잘했다. 껍질이 한 번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주욱주욱 잘 벗겨진다. 삶은 고구마 줄기는 반쯤만 껍질을 벗기고 나머지 반은 씻고 잘라 냉동실에 넣었다. 껍질 벗긴 건 김치용이고 껍질 벗기지 않은 건 생선조림 할 때 생선 아래쪽에 깔 용이다. 






나도 마법님처럼 지난 김장 때 남겨 두었던 김장용 소를 사용해 고구마 줄기 김치를 버무렸다. 질기지도 않고 맛도 괜찮은데 감칠맛이 덜하다. 아, 껍질을 벗기고 한 번 더 푹 익혔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또 생략했다. 들기름을 첨가하여 나물처럼 만들었다. 처음 맛에 비해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임플란트 한 자리를 잘도 알아 찾아들어 빠져나오지 않으려는 깨소금은 넣지 않았다.


고구마 줄기 김치가 중간 크기 반찬통 하나 가득이다. 고구마 줄기 김치 담그는 데 참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모양도 맛도 관계없이 어쨌든 횡재다. 하긴 뭘 조금은 알아야 다른 사람의 정답을 힐끔거려서라도 제대로 베껴 쓸 것 아닌가. 두 번째 도전이라면서 고구마 줄기를 맞이하는 마음 자세부터 도통 일을 임하는 자세가 아니다. 아 하고 소리치면 아 비스무리하게라도 메아리를 보내진 못할망정 엉뚱하게도 과정은 물론 정확도까지 엉망인 음정이 웬 말인가 말이다.


고기 몇 점 구워 낸 저녁 상에 고구마 줄기 김치도 올리고 남편에게 실수단지를 확 열어 보였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누가 날 위해 이렇게 새까만 고구마 줄기 김치를 만들어 주겠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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