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아싸' 엄마가 '자발적 인싸'인 딸을 낳았다

by YUJU

나는 자발적 아싸로 태어났다. 누가 가르친 것은 아니고, 순전히 타고난 기질이다. 엄마의 기억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이 많이 가는 두 살 터울 남동생에 비해 독립적이고 뭐든지 혼자서 씩씩하게 잘 해내는 아이였다. 아니, 혼자서 잘 해내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도 않았을 영유아기 무렵부터 누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말이 터질 무렵 나는 동요 가사를 마음대로 지어 부르곤 했는데, 엄마가 원래 가사를 알려주려고 하면 두 살짜리 꼬맹이 주제에 "아니야!! 그거 아니야!!!"라며 화를 버럭버럭 냈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마다 "알았어, 너 마음대로 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너 마음대로 해'는 그 이후로 살면서 내가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책만 읽는 아이였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기질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사람과 상호작용 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고학년이 되고 나니 이러한 습관은 더욱 굳어져서, 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들이 운동장에 나가면 나는 혼자서 학교 도서실로 향했다. 6학년 졸업을 앞두었을 무렵의 어느 종례시간, 담임 선생님은 반 친구들 앞에서 부러 나의 책 읽는 습관을 지목하며 "선생님 생각에 OO 이는 나중에 정말 큰 사람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라고 한껏 칭찬해 주셨다. 지금이라면 친구들과 담소도 즐기지 않고, 놀지도 않고, 그저 자기 책상에 붙박이처럼 앉아 하루 종일 혼자 책만 보는 아이는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 제안을 받았겠지만, 솔직히 인성은 좀 빻았더라도 공부만 잘하면 장땡이었던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에서 나의 이런 아싸력은 제재를 받기는커녕 권장되었다.


학부 시절에는 학교에서 공부 이외의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동아리 하나 들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절정에 다다른 내 아싸력의 킬포는 졸업 때까지 점심에는 항상 혼밥을 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당시에 강박적으로 지켰던 혹독한 다이어트 식단을 깨기 싫어서였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며 혼밥을 먹는 시간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온했다. 같은 학번 동기들이 점심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나를 야속하고도 수상쩍게 생각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그렇게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을 했음에도, 20년간 한결같이 나를 불러주고 놀아주며 '친구'로 대접해 주는 2명의 찐친들이 아직도 고맙다.


돌이켜보니, 나는 살면서 남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사랑은 부모님이 주시는 것만으로 이미 넘치게 충분했다. 굳이 받아야 한다면, 사랑보다는 인정이 받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랑보다는 인정이 훨씬 받기 쉬웠음을 시인한다. 누군가에게 "야, 쟤 진짜 또라이야."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것도 한편으로는 내 개성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의 인정일 테니. 사랑을 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다고 욕을 먹는 걸 원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내 자발적 아싸력은 항상 누군가의 표적이 되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착각했고, 나르시시스트적인 사람은 그를 중심으로 한 ‘관계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나를 억지로 꿇리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럴 때마다 내 자발적 아싸력이 오히려 나를 지켜줬다. 인간관계에서 아쉬울 게 전혀 없으니 아무리 회유하고 협박해도 영향을 1도 받지 않는 나를, 결국 그들이 먼저 포기하고 내가 세운 경계의 바깥으로 산산이 사라졌다.


이런 나조차도 결혼이라는 걸 했다. 남편은 아무래도 그때의 나에게 사기당한 것 같다며 뒤늦게 현타가 왔 그리고 이런 나에게도 2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아이는, 정말 신기하게도 나와 전혀 다른 기질로 태어났다.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람한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로.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기도했다. 학교에서 꼴등을 해도 좋으니, 제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만 되게 해달라고. 집단성을 중시하는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자발적 아싸로 살면서 내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오해들, 뒷말들, 소문들.. 나는 어차피 아싸로 태어났으니 내가 짊어지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였지만, 혹시나 태어날 내 아이가 나와는 달리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나의 경험은 아이가 겪기엔 버티지 못할 만큼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상대로 사랑을 많이 받고 싶은 채로 태어난 내 아이는, 다행히 '자발적 인싸'가 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예쁜 짓만 했다. 사랑을 받고 싶으니 모든 초점이 타인에게 향해있어서,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캐치했다. 그리고 크면서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남들의 사랑과 관심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자발적 아싸인 엄마의 가치관이 자신과 다름을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궁금해했다. 나는 아이에게 다양성을 알려줄 수 있음이 기뻤다. 모든 인간 개체가 하나같이 사랑받기만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도 수는 적지만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며, 놀랍게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산다는 사실. 그러니 혹여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세상이 끝나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나도 아이에게 한 수 배웠다. 난 욕쟁이 할망구가 될 때까지도 사랑받음의 가치와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다 죽겠지만, 사랑받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과 자긍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발적 아싸 엄마와 자발적 인싸인 딸. 우리의 세상은 오늘도 이렇게 조화롭게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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