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교육과 비판 '교육'

by YUJU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세미나에서, 독일에서 비판교육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판교육이라는, 교육학의 한 분야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너무나 흥미로워서 찾아보니 비판교육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즘과 전체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을 겪게 된 독일사회가 “어떻게 교육이 히틀러 독재에 협력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태동한 비판교육은 무엇보다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주체'로서 개인의 성장을 중시한다. 비판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민주적 시민을 육성하는 것이다. 비판교육은 학습자에게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데, 이는 단순 암기·훈련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것이다. 비판교육의 학습자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비판교육은 태생부터 지금까지 반골 of 반골로 살아온 내가 12년의 지옥 같은 공교육 기간 동안 너무나 갈망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교육이다. 대통령을 벌써 두 번이나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릴 정도로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했다는 한국 사회에서 비판교육이 여전히 시행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역사적으로는 권위주의적 식민지 교육 전통의 잔재, 문화적으로는 유교적 위계질서와 집단주의적인 사회 분위기의 제약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심각하고 현실적인 문제는 썩어빠진 '입시 중심' 교육 제도 때문일 것이다. 독재자의 전횡과 횡포,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한 시민들이, 근대 교육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고루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대학 입시 중심의 교육 체제에는 놀랍게도 아무런 비판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니, 비판은커녕 아직 교육 대상에 해당되지도 않는 영유아 아기들까지 동원하여 오직 '의대 합격'만이 길이요 빛이요 생명이 되는 이 비틀린 교육체제에 어떻게든 순응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총력을 다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판교육의 핵심적 가치들은 입시 제도에 일말의 불만조차 없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아이들이 모인 대치동 논술 학원에서 논술 시험 지문으로서나 볼 수 있는 참담한 광경이 연출된다.




비판교육의 꽃은 '반문(反問)'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히틀러가 유태인 대학살을 명령할 때, "왜?"라는 질문이 있는 부하는 그 질문의 과정을 거침으로서 자신의 이성을 행위의 판단 근거로 삼게 된다. 생명의 존엄성을 근거로 히틀러의 학살 지시에 반대하는 부하는 군을 떠나거나 항명하게 될 것이고, 히틀러의 지시에 동조하는 부하는 '왜'라는 질문에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반유대주의적 신념을 토대로 그의 말에 복종하는 자발적인 결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두 경우 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본인의 책임이 따르는 '자율적 선택'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문제시되는 이들은, 바로 "까라니까 깠어요"라는 무비판적 복종의 부류이다. 독일은 이러한 '무비판적 복종'의 부류에게 모른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지 않기 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인의 이성적 판단으로 결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도록 만드는 비판교육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입시 중심의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성적을 받게 하는 것에만 급급한 나머지 "왜?"라는 열린 질문과 비판적 사고가 환영받는 공간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교육 풍토에서는 질문을 통해 기존 질서·권위·관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비판교육이 불가능하다. 설령 인생 경험이 풍부한 어른의 시각과 관점에서의 정답이 있을지라도, 그 답을 어른이 제시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아이의 자율적 선택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앞으로 수많은 중요한 선택이 이어질 아이의 인생 전체에서 올바른 판단력과 실행력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답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을 근본적으로 박탈당한 대한민국 학령기 청소년들은, 자율적 주체에게 주어지는 체제에 대한 저항력을 상실한 채 오늘도 책상 앞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가져다주는 오지선다형 문제집과 씨름하며 '어른들이 공부하라면 해', '이런 식으로 공부 하라면 해'라는 무비판적 복종을 뼛속깊이 내면화하며 자라고 있다.




2024년 비상계엄 사태 때, 계엄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소극적 항명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낸 몇몇의 훌륭한 군인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많은 이들은 국회의사당에 포진된 경찰과 군인들이 윗선의 불법적 지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항명하지 못한 것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에 유독 탁월한 적응력을 보이는 순종적인 학습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인 한국의 교육 체제 하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비판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군인들에게 적극적 항명의 의지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기형적인 한국 교육 제도를 갈아엎을 수 있는 것은, 그 교육의 부작용으로 인해 정신과 삶이 피폐해진 '피해' 학생들의 저항과 투쟁뿐이다. 한국 교육의 목표가 '국내외 명문대 입학'에서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주체의 양성'으로 정상화되고,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가 내면화되어 사회 전반에 비판교육의 열매가 실하게 맺히는 것을 보게 되는 그때까지, 나는 한국 교육을 주구장창 비판할 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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