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연대의 경제학

by YUJU

양관식의 스윗함을 '부치 기사도'로 정의하는, 한국의 깨어있는 청년 지성인들과 1년여간 페미니즘 세미나를 함께 해오고 있다. 출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고전이 될 조짐이 보이는 낸시 폴브레의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을 읽으며 나누었던 '돌봄'에 대한 이야기 중 기억에 남기고 싶은 두 개의 삽화揷話가 있어 여기에 기록해 둔다.



내가 미국에서 아이 키우는 사촌 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야. 미국 초중고 학생들에게는 스포츠 클럽의 위상이 엄청나서, 주말이면 아이들이 운동장이나 스포츠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과야. 야구, 수영, 농구, 테니스, 미식축구 등등 종목도 다양한데, 스포츠와 관련해서 아이들을 클럽에 라이딩하고, 스케줄과 스포츠 성적을 매니징 하는 것에 아빠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한대. 우리 조카도 수영을 잘해서 학교 대표로 선발이 되기도 하고 그랬는데, 형부가 항상 매니저처럼 경기를 따라다니면서 아이 상태를 체크해 주더라고. 아이가 성적을 잘 내면 그 아이 아빠 어깨가 같이 으쓱 올라가기도 하고. 아무래도 스포츠 종목이다 보니 아빠들간의 그런 마초적인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 그런데 한국을 봐. 한국도 주말이면 애들 어디 축구 클럽도 보내고, 다양한 운동시키는 부모들 많거든? 근데 신기한 게 아빠가 애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어. 대부분 엄마가 라이딩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학원 차가 와서 애들을 태워가. 한국 아빠들은 참 이상하지 않아? 심지어 자신의 남성성, 마초력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마저도,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임무와 충돌이 되면 남자들은 그 자리에 나타나려 하지 않잖아. 왜 마치 본인들은 아이의 돌봄과는 아무런 상관도, 관계도 없는 사람인 양 돌봄의 자리에 한사코 '부재'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저는 아이를 키우며 박사 논문을 쓰고 있어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오전 9시, 아이를 하교시키기 위해 오후 4시 즈음 집에서 출발해야 해요. 그리고 주 5일 동안 피아노, 댄스 학원 라이딩을 합니다. 학원 다녀와서 밥 먹이고, 숙제시키고 하면 벌써 밤이라서, 4시 이후로 저의 공부 시간은 끝났다고 봐야 해요. 어떤 분은 제 면전에 대고 말하더군요. 학자로서 넌 끝났다고. 네, 저도 이미 잘 알고 있어요. 저녁 공부가 없는 삶을 사는데, 고작 하루에 6~7시간 공부하는 정도로 어떻게 학자가 될 수 있겠어요.

저도 생각은 해 봤어요.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돌봄에 대한 나의 임무를 사회취약계층 여성에게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를 눈가리고 외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교 도우미를 한번 써볼까. 그분이 학교에서 아이를 받아서, 학원을 보내고, 저녁만 챙겨 먹여주시기만 한다면 적어도 난 하루 12시간 정도는 내 공부를 온전히 몰두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돈이 문제더라고요. 가족들에게 내 공부 시간 확보를 위해 100만원이 넘는 돈을 쓰자고 말하는 것이 입에서 차마 떨어지지가 않더라고요. 남편이 "공부가 그렇게 걱정되면 내가 육아휴직 쓸 테니, 절반 월급으로라도 일단 살아보자. 대신 내가 하루 종일 아이 봐줄 테니 넌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해"라고 해 준다 한들, 하나도 기쁘지 않고 오히려 걱정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아, 나도 결국은 자본주의의 부역자일 뿐인가. 운좋게 양관식 같은 남편을 만나서 이미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사실 내 공부보다 내가 누려야 할 생활비의 액수가 더 중요할 뿐이었나. 내 커리어를 위한 시간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 시간을 메꾸기 위해 가계가 곤란해지는 건 싫고. 이 모순되는 욕심 사이에서 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낸시 폴브레가 지적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교차성.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이 둘을 모두 극복해야 한다는 면에서 더 무겁다. 만약 누군가 무상으로 한국의 모든 아이 키우는 가정에 '1 가정 1 육아도우미'를 지원해 준다면, 한국 아빠들이 단돈 1원도 들지 않는 학부모 단톡방에 엄마를 대신해 자발적으로 입장을 하는 '특이점'이 온다면, 구조에 맞서는 행위자로서 여성이 가진 '협상력'의 발현이라 할 수 있는 '출산 파업' 즉 저출산 문제는 바로 내일부터라도 극적인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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