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괜찮으면 안 되는 이유

by YUJU

말을 좀 배려 없이 하는 지인이 있다. 평소 모습을 보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문득문득 기침처럼 본심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으로 듣는 사람에게 은근히 꼽을 준다. 듣다 보면 '어라? 이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싶고, 모임이 파하고 돌아가면서 그 말이 더 곱씹어져서 집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기분이 완전히 더러워진다.


그날도 이 사람의 말 때문에 긁힌 채로 집에 돌아와 당시의 상황을 복기하며 한껏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 사람으로부터 '편안한 밤'을 보내라는 문자가 왔다. 기가 막혔다. 본인은 자기가 한 말의 여파를 전혀 모르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나름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자평하고 있겠지. 하지만 만족스러운 '오늘'을 보낸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망쳐버린 나의 '오늘'을.


나 또한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하루를 망쳐왔을 것인가. 내가 오늘을 잘 보냈다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발 뻗고 잘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로 하여금 마음이 긁히고, 다치고, 집에 돌아와 상황을 곱씹으며 내 말을 떠올리며 불편해하고, 편한 밤을 보내지 못했을 것인가. 비록 내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누군가는 나의 배려 없는 말 때문에 나를 남을 쉽게 무시하는 교만하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좀 더 냉정해지자면 그들이 보는 것처럼 내가 정확히 그런 사람일 수 있다. 그렇기에 배려 없는 언사를 항상 머릿속에 장착하고 살다가 실수로 한 두 마디 내뱉게 되는 것일 수 있다. 먼저 생각이 있지 않고서는 말이 있을 수 없으니.


그래서 나는, 나의 오늘을 함부로 괜찮다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나의 주변 모두가 나로 인해 괜찮은 오늘이었어야 내 오늘도 괜찮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도무지 불가능하기에, 나 또한 괜찮은 오늘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린 지 오래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충 괜찮다고 뭉개는 순간부터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오늘'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으며, 내가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긁었는지, 누군가 나의 생각 없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불편한 밤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를 참회해야 한다. 그리고 무언가가 떠오르거든, 나에게 당한 사람보다는 상처 준 내 마음이 그로 인해 몇 배는 더 불편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오늘은, 절대로 괜찮으면 안 된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윤동주,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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