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 Ⅳ. 흔적과 기억과 시간
요안나 할머니의 유족들은 빈소를 정리하며 부의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할머니의 아들 다섯과 딸 하나는 우애가 깊기로 유명했는데, 자신들의 끈끈한 우애가 지속되거나 또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거나를 가르는 기점이 지금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사회생활로 얻어들은 바가 무척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빈소를 차린 지 이틀째 되는 날, 조문객이 적은 시간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회의를 열었다.
이미 퇴직한 늙은 장남은 주장 대신 입을 다물었다. 수십 년을 노쇠한 부모님을 모셔 왔고 지금도 홀로 남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며 친족 내 대소사에 늘 참석하여 조의금이니 축의금이니 온갖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 온 장남 내외가 침묵하자,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됐다. 장남의 아내는 그녀의 큰딸에게 ‘들어온 대로 나눠서 가져가는 게 제일 문제가 없을 거다’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큰딸은 늘 양보하는 부모의 모습이 조금은 한심하다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할머니가 기뻐할 일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왕성한 사업가이자 생활체육인으로 인맥이 어마어마해서 조문객도 많을 예정인 둘째 아들이 ‘좋은 쪽으로 하자’고 말했다. 그때 둘째 아들의 아내가 급진적인 제안을 했다. 부의금에서 장례에 사용되는 비용을 제하고 남은 것은 내내 고생할 젊은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늘 철없는 자기 고집만을 피우던 그녀가 거국적인 제안을 하자 모두가 조금은 얼떨떨해졌고 이내 박수가 나왔다. 그래. 그게 요안나 할머니가 원하던 바였을 거야!
자기 앞으로 들어온 부의금이 꼼꼼하게 기록되도록 두 자녀를 빈소 입구에 재빨리 앉혀 놓았던 셋째 아들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넷째 아들은 ‘좋은 게 좋은 거다’고 웃었고 그만큼이나 시원시원한 그의 아내도 ‘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직업 없이 평생을 주부로 산 딸이나 퇴직 후 먼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막내아들은 발언권이랄 것이 없었고 다만 평화로운 빈소 분위기에 안도할 뿐이었다.
꼼꼼한 손자 세 명이 빈소에 딸린 작은 휴식 방에 모여 부의금의 총액을 정리했다. 예상과는 달리 사업가인 둘째보다 더 많은 조문객이 넷째의 인맥으로 빈소에 찾아왔고 그다음이 장남 인맥이었다. 부의금 처리가 합의된 둘째 날 이후 약삭빠른 둘째와 셋째가 빈소 방문 외 다른 방식으로 부의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자애로운 요안나 할머니가 다 알고 계실 거라는 생각에 닿자 이내 나는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렸다. 벌할 일이라면 할머니가 하시겠지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저 사람들은 늘 그랬듯 이번에도 참 겁이 없어. 할머니가 다 보고 계실 텐데.
할머니 손자 열두 명에 손주사위와 손주며느리의 손에까지 현금 봉투가 쥐어졌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의 수고로운 정도가 참작되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장례라는 타이틀 아래서 그런 걸 따지는 건 너무 세속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삼일 밤낮을 장례식장에서 머물렀던 나와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던 사촌 동생이 같은 봉투를 받았다. 나는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키고 배웅하는 것은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이었고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봉투에는 할머니가 주는 마지막 용돈이라는 말이 덧붙었다. 난 이걸 내 멋대로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원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삼우제까지 지낸 후 나는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다니던 성당으로 갔다. 성당에는 ‘연미사’라는 것이 있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다. 봉헌금과 함께 미리 접수해 놓으면 주말 미사 때 신부님으로부터 그들의 이름이 불린다. 나는 절차 같은 것을 잘 몰랐고, 성당 사무실 접수대에 가서 내가 받은 봉투를 그대로 드린 후 요안나 할머니 연미사를 넣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봉투 안에 있는 금액을 확인하고 그대로 이번 주말 미사에 할머니의 이름이 올라갈 거라고 했다. 동생도 나와 같이 할머니 성함을 접수했고 그다음 주말 미사에도 할머니의 이름이 올라갈 거라고 했다. 앞으로 이 주간 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이들이 요안나 할머니의 이름을 들으며 함께 기도해 줄 거였고 그러면 할머니는 두려움 없이 평온하게 원하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요안나 할머니의 하나뿐인 딸 김현갑 씨는 온갖 신경증이 다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까지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은 물론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기 원망이 김현갑 씨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큰 오빠의 병증이 날로 심해지는 것도 김현갑 씨를 괴롭히는 원인이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오빠.
할머니의 연미사를 내가 넣었다는 소식을 듣자 고모는 득달같이 전화해서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 돈을 한꺼번에 다 주었냐. 한주에 만 원씩 몇십 번을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성당에서 그런 거 안 가르쳐 주더냐? 아니, 그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신도한테 알려줬어야지!
그러다 한참 후에 다시 전화해서 이런다. 내가 성당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엄마 백일 연미사 넣어줘야 한다더라. 내가 오빠랑 동생들한테 얘기해서 돈 모아서 이거 하자고 했다. 다 얘기해 놨다. 너 근데 그 봉투를 왜 한꺼번에 줬니. 그거 나눠서 했으면 백일도 더 했겠다. 성당 믿지 말고 네가 날짜 계산해라.
그렇게 몇 번씩 짜증을 내거나 울거나 기운 빠진 고모의 목소리와 통화를 했다.
말하자면 그건 고모의 애도 방식이자 고모의 기도였다. 고모는 그런 식으로 기원했다. 성당 사무실에 전화해서 날카롭게 항의하는 방식으로, 우리 엄마 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윽박지르는 방식으로. 엄마가 좋아할 법한 일을 찾아 큰 조카에게 전화하여 지시하는 방식으로. 고모는 자신의 죄책감을 타인에게 전가하여 해결하면서 할머니의 안녕을 기원했다. 남은 자들의 기도는 떠난 이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에 가까웠다.
요안나 할머니의 아들들에게는 균열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기도이자 애도였다. 산과 같던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은 삼우제가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해야 할 때가 오자 서랍 속에 꼭꼭 숨겨 놓아야 할 것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요안나 할머니는 무척이나 장수하며 아들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므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상실의 크기는 내 생각보다 작았을지도 모른다. 모친상을 치른 얼굴들이라기엔 너무나 멀쩡하고 반딱거리는 표정을 보며 잠시나마 혼란스러웠으나, 자기가 일군 가정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무뚝뚝하게 해내는 것이 할머니가 바라는 것이었다는 걸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해서 이내 이해가 됐다.
요안나 할머니의 큰 며느리 이경신 씨는 문자 그대로 기도했다. 이경신 씨는 오랜 애증의 관계에 있던 시어머니를 위하여 미사를 드리고 봉헌을 바쳤다. 그녀는 친정 부모님을 꽤 일찍 여의었는데 그분들의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혼자 성당에 가 조용한 추모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이제는 그 명단에 요안나 할머니가 오른 것이다.
이경신 씨의 운신은 너무도 고요해서 누구도 그녀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손 안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묵주를 볼 때에서야 오늘도 이 사람이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일상은 기도로 유지됐다.
그녀는 틈만 나면 기도 초를 봉헌했다. 살아 있는 가족들과 세상을 뜬 어른들을 위하여 그녀는 기도 초에 불을 켰다. 죽은 사람들이 지상에 남겨 두고 간 애달픈 가족들을 위해서 기꺼이 살펴 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나는 그 기도에 빚을 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기도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할머니의 그것과 똑같이 닮았다.
나는 어떤 경전을 오래 읽었다. 할머니가 믿던 신에 관한 것도 아니었고 다른 가족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몰랐기에 할머니가 붙잡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고 싶었다. 할머니는 죽은 후 천사들의 비호를 받으며 천국 문을 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연옥이라는 곳에서 한동안 지내며 아흔 인생을 기꺼이 반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어떤 세계에서 소중하고 귀한 아기로 다시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좋은 것들만 기원했다. 겁 많은 할머니에게 더는 무섭거나 외로운 일이 없도록 매일매일 할머니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그 무렵에는 주말 나들이를 갈 때도 기도문을 항상 챙겨 가지고 갔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도문을 읊으면서 한계 없이 상승하는 할머니를 상상했다. 죽은 사람은 인간의 지력으로 알지 못할 어떤 곳을 향해 상승하는 방식으로 이동할 것 같았다. 누군가가 할머니 곁에 함께 해 주었으면 했으나 거기까지는 내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소리 내어서 하는 기도가 어떤 기이하면서 신비로운 형체로 변하여 상승하는 할머니를 돕고 있지는 않을까. 상승하는 속도를 지상에 있는 내가 따를 방법이 없어, 내가 당장 숨을 거두게 된다 해도 할머니를 따라잡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하겠구나. 내가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기원과 할머니를 떠올리고 오래 묵상하는 일뿐.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