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 Ⅳ. 흔적과 기억과 시간
요양병원에서는 입원할 때 할머니가 입고 있던 옷가지들을 비닐봉지에 담아 할머니의 몸이 실린 구급차에 함께 실어 보냈었다. 고인의 마지막 물품을 유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할머니는 대학병원에 입원한 후 요양병원으로 전원했었으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몇 개월 전 그 겨울에 할머니가 입원하러 가며 입었던 일상복이었던 셈이다. 익숙한 할머니의 옷더미가 보였다. 무릎까지 오는 꽃분홍색 경량 패딩과 착용이 편해서 자주 하던 짧은 분홍색 목도리가 있었다. 몇 개월간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었겠지만 쿰쿰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 아래는 할머니가 숨을 거두던 순간에 입고 있던 낡은 입원복도 있었다. 공용 입원복은 깨끗이 세탁을 해가며 노인들끼리 돌려 입었을 테지만, 죽는 순간에 입은 옷은 유족에게 돌려주는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입기엔 너무 큰 옷이었다. 소매를 몇 번씩 접어서 입어야 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입고 있었던 옷이라는 생각에 나는 그 톡톡한 천에 얼굴을 묻고 한참 있었다. 할머니에게서 나던, 초봄 흙에서 나는 것 같던 냄새를 맡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약품 냄새만 났고 할머니 냄새는 찾을 길이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당일, 장례에 필요한 절차를 밟고 본가에 들러 할아버지를 만났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쓰던 방에서 눕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로 다리를 모으고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서 ‘너무 울지 마세요’라고 말했고 그게 제대로 된 위로가 되었을 리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내가 전혀 괜찮지 않은데 할아버지께 다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사는 동안 뭘 잘해줬다고 우냐며 윽박지를 배짱도 없었는데. 몇십 년 만에 할아버지의 손을 맞잡은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장례를 마치고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집 어디에 두어야 하나 고민하던 가족이 그걸 TV 옆 바닥에 세워 내려놓았을 때 할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할머니 사진을 짐짝처럼 대할 수가 있냐고 말이다. 할아버지는 영정을 챙겨 두 분이 쓰시던 방에 있던 할머니의 기도 책상에 올려 두었다. 할머니가 생전 많은 시간을 보낸 책상 앞이라니 적절한 장소를 찾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떠난 지 일주일 정도 후에 자꾸 간 사람 생각이 나서 괴로우니 할머니의 옷들을 모두 치워달라고 말했다. 행거에 정갈하게 걸려 있던 할머니의 외출복부터 모두 치워졌다. 그걸 치우는 것은 맏며느리인 엄마 몫이었다.
나는 일찍이 할머니의 꽃분홍색 외투를 집에 챙겨 와 보관해 놓았었다. 한동안은 ‘할머니’라는 단어만 들으면 서러운 울음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걸 빠르게 멈출 방법이 없어 외투를 할머니처럼 품에 안고 울음이 잦아질 때까지 견뎠다. 분홍색 목도리는 날이 풀릴 때까지 내가 하고 다녔다. 가끔 아이의 목에 둘러주기도 했다. 부드럽지도 예쁘지도 않은 목도리를 하고 다녔던 이유는 할머니를 어떤 방식으로든 붙들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본가에서 챙겨 온 옷이 하나 더 있었는데 할머니가 특별한 자리에 갈 때 입던 요란한 무늬의 재킷이다. 대체 뭘 형상화한 건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무늬들이 그들끼리 엉켜 있었고 바탕이 되는 색은 무려 형광빛이 도는 연두색이었다. 얼핏 모르고 보면 자유분방한 이십 대 대학생의 난해한 패션 같아 보이기도 하는 옷이었다. 나는 여기에도 할머니의 어떤 것이 서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몰래 가져와 집에 보관해 두었다.
망자의 옷을 살아 있는 사람이 가져오거나 보관하는 것은 금기라고 한다. 관습대로라면 물건을 모두 태워버려야 한다 했으나, 이제는 허가 없이 소각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그게 법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도시 한 복판에서 그걸 실행할 방법이 잘 보이지 않았을 거다. 한참 인터넷을 뒤지다가 유품 소각을 대행해 주는 업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여러 정보를 그러모으고 있을 때, 정리 총책임을 맡은 엄마는 할머니가 남긴 옷을 의류 수거함에 넣을까 단체에 기부할까 고민 중이었다. 결국, 어떤 경로든 죽은 사람의 물건을 생판 남이 받게 되는 것이 꺼림칙했던 엄마는 그걸 그냥 ‘생활폐기물’로 처리했다. 그런 엄마에게 질려 한동안 대화하지 않았다. 나도 별다른 방법을 몰랐으면서 괜한 감정 풀이를 한 거다. 두 벌의 외투를 챙겨 온 것이 조그만 위안이 될 뿐이었다.
할머니가 여러 번 방문했던 옛집에서 지금 살던 집으로 이사할 때도 꽃분홍색 외투와 형광 연두색 재킷은 내 옷들과 함께 옮겨졌다. 내가 어느 집에 살고 있는지를 할머니도 알아야 하지 않나 싶었다. 자주 입던 옷을 가져가면 할머니가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평생 이 옷들을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할머니에게는 애착 지팡이도 있었다. 사실 할머니가 그 물건에 엄청난 애착이 있어 매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었고, 허리가 굽으며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필수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노화로 인해 할머니는 허리가 옆으로 굽었다. 체형을 가리는 펑퍼짐한 옷을 입어도 몸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 정도로 굽어 있었다. 그건 어떻게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다수의 내원 과정에서도 치료해 달라 요청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식들이 이 지팡이 저 지팡이를 사다 날랐고 그중에 채택된 것이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철제 등산지팡이였다. 현관 신발장 옆이 지팡이를 보관하는 장소였고 나는 오갈 때마다 익숙한 그 물건을 보았다.
할머니의 겨울 외출은 적당히 툭툭한 외투와 지팡이, 분홍 목도리, 모자, 돋보기안경, 작은 손가방을 차려 든 모습으로 기억된다. 게다가 할머니는 또래의 모든 할머니가 하는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에 나가면 이런 모습을 한 할머니를 수십 명도 넘게 볼 수 있었다. 인상도 분위기도 비슷한 특색 없는 할머니들이 지천이었다. 이 사실은 가끔 나를 슬프게 했다. 어느 날, 동네 마트에 갔다가 돋보기안경에 흰 파마머리, 붉은 계열 상의를 입은 인상 좋은 노인 여성 한 분을 목격했다. 뒷모습이 익숙하여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 나는 ‘할머니도 뭐 사러 나왔나?’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내 쪽으로 돌아서자 할머니와 닮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얼굴이 나타났고, ‘할머니 아니었네. 아는 척했으면 좀 민망할 뻔했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노인 여성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 후에 나는 내가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할머니를 만날 일은 앞으로 결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할머니의 외양은 흔한 그 나잇대 어르신이었고 할머니를 닮은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이제 나는 저분이 혹시 우리 할머니인가 헛갈려서도 안 되는 거였다.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다.
한 시간 반 정도를 외곽으로 나가면 할머니가 잠든 곳을 방문할 수 있고 나의 옷장에는 할머니의 옷이 있었기에 나는 여전히 당신과 관련된 어떤 것들을 꼭 쥐고 있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 세월이 지나 할머니라는 사람이 흐릿해진다면, 두꺼운 겨울 외투가 버겁게 느껴져 옷장 정리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들은 꼭 자연스럽게 되기를 바란다. 할머니를 떠올려도 맑은 기억만 남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할머니의 옷가지들이 처리되고 난 후에도 안방 곳곳에는 할머니 물건들이 숨어 있었다. 언젠가는 이걸 정리해야 했지만, 가족들은 짐짓 모른 체하며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안방을 혼자 쓰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TV 볼륨을 최대한으로 키워 놓고 밤새 시청자 없는 채널을 틀어놓기도 하며. 덤덤한 일상을 그대로 꾸려나가면서 말이다.
아빠의 병증이 심해지고 더는 할아버지를 부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넷째 숙모가 할아버지를 자기가 모시겠다고 결단했다. 할머니와 평생을 살던 그 방을 떠나야 했기에 할아버지에게도 결단이 필요했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할아버지는 마음이 서자 순식간에 이사 가방을 쌌다. 할아버지는 정신이 무척 또렷하고 거동이 불편해 본 적이 없는 분이었기 때문에 지팡이 같은 필수품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챙긴 것은 할머니의 영정사진이었다. 그것이 내가 할머니의 외투를 챙겨놓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나는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넷째 삼촌 집에서 반년, 막내 삼촌 집에서 일 년 남짓을 보낸 후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생애 마지막에 가는 곳. ‘요양’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심함이, 그리고 약간의 뻔뻔함이 야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