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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Oct 02. 2024

에필로그.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할머니!     


 왜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아? 매일 보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백번 천 번 외쳤는데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얼굴을 안 보여주는 이유는 뭐야? 내가 생전 할머니한테 잘못한 게 많아서 그럴까. 그래서 할머니는 미운 얼굴 더는 안 봐도 되어서 후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할머니는 날 더러 큰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사람이 되어 사는 것 같아. 남한테 못된 말 못된 짓 안 하면서 사는 딱 그 정도. 이 정도면 할머니도 그만하면 잘했다 내 새끼, 할까. 그래도 중간 사람 중에서는 제일 큰 사람이 되어볼까. 여전히 이렇게 사는 것이 많나 늘 고민해. 나는 할머니한테 커서 그런지 할머니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아. 이제 주변에 할머니처럼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불안해. 그래서 듣지도 못할 할머니께 나 잘하고 있냐고 자꾸 묻게 돼. 당신이라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그런 생각들 있잖아.     


 가족들은 할머니를 어렵지 않게 잊어 가는 것 같아. 요양원에 들어간 할아버지도 친구 많이 만들면서 재밌게 살고 계신대. 아빠 병증은 점점 악화되고 있지만, 조금이나마 속도를 늦추려고 매일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그래서인지 스러지는 속도가 전보다 느려진 것 같아서 다행이야. 엄마는 어떠냐면…. 그런데 할머니는 엄마가 궁금할까? 할머니한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는 내가 평생 풀 수 없는 숙제 같을 거야. 엄마는 복자 수녀회의 특별증서를 본 날 이후로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묵묵히 엄마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 그 ‘흔들림 없음’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할머니!     


 왜 급히 갔어? 내가 아니라도 그 잘난 아들들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가지. 그때 우리는 모두 일층 로비에 모여 있었고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히 담긴 얼굴을 보고 싶었어. 그렇게 간 것이 외롭지는 않았어? 나는 할머니가 외로울까 봐, 겁 많은 우리 할머니 가는 길이 적적하고 무서울까 봐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할머니를 기억해 달라고 연락하고 글을 썼어. 그 사람들이 한 번씩 할머니를 떠올려 주면 가는 길이 좀 덜 무서울 것 같아서.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주 외로웠겠지. 사람의 마지막이 왜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지 모르겠어.     

 할머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내가 끝까지 기억하고 싶어. 내가 세상에 사라지면 윤이가 그 뒤를 이어 왕 할머니를 기억할 거고, 윤이는 또 자기의 아이에게 오래전 돌아가신 그 할머니에 대해서 말하겠지. 그렇게 할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기억을 타고 자유롭게 흘러 다닐 거야.     


 내가 눈 감은 할머니의 귀에 대고 마지막에 한 말 기억나? 할머니의 귀가 금세 닫힐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 모든 말들을 다 할 수가 없겠더라. 기름지고 거품 낀 모든 것들을 다 거두어 내고 마지막에 남은 한 마디가, 살아 있는 동안 매일 서로 나누어야 했던 소중한 한 마디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어. 할머니는 어떤 유언도 남기지 않았지만 아마도 할머니라면 ‘윤이와 가족들에게 이 말 많이 해 주고 살아라’라고 말했을 것 같아. 그래서 다시 한번 쓰는 말, 내가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할머니.

사랑해, 고마워.     


2024년 여름, 할머니의 첫 손녀 올림.





이번 편을 끝으로《할머니의 손》연재를 마칩니다. 저의 글을 기꺼이 읽어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 인사 전하며, 함께 요안나 할머니를 기억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선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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