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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l 10. 2021

별이의 말들

아이에게 배우는 세상 - 성장의 기록


1. 별이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비둘기를 가리키며) 저기 등에 뭐야?”

     “응, 비둘기 무늬야.”

     “아니. 저거 누가 그랬냐고!”

     “그냥 비둘기 등에 무늬가 있는 거야.”

     “아니. 누가 저거 그렸냐고?”


 이후로 나는 이 대화를 자주 인용한다.


     “(별이 안쪽 팔에 있는 몽고점을 가리키며) 이거 누가 그렸지?”

     “몰~라~”

     “이건 엄마가 그렸지. 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별이 팔뚝에 새로 생긴 점을 가리키며) 이건 누가 그렸게?”

     “엄마가 그렸어?”

     “아니~ 별이가 태어나고 혼자 그렸지!”

     “아~ 그렇구나!”




2. 아파트 단지에 둘레길로 만들어 놓은 수풀 길이 있다. 별이는 하원 할 때 꼭 그 길로 걸어서 가려고 한다. 낮은 키의 풀 덕에 별이가 꽃구경, 나비 구경, 벌레 구경하기 좋았는데 몇 차례 큰 비를 맞으며 놀라운 속도로 쑥쑥 자라 별이 키를 넘어서게 됐다. 벽처럼 높아진 수풀 길을 보며 별이가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엄마. 풀은 왜 미용실 안 갔어?”


 주기적으로 가는 미용실에 별이가 익숙해져서 다행이다. 울지도 않고 머리를 잘 잘라서 엄마의 마음은 뿌듯해졌다.




3. 별이는 달콤한 맛이 나는 간식과 고기를 좋아한다. 어떻게든 채소를 먹여보려 잘게 잘라 주거나 기름에 볶아서 주는 편인데, 그날은 그럴 여유가 없어 브로콜리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게 잘라 밥에다 얹어 주었다. 역시나 별이는 고기를 먹겠다고 브로콜리를 휙 옆으로 떨어뜨린다.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브로콜리를 보며 한숨 쉬고 있는데 별이가 밥숟가락을 가리키며 말한다.

 

    “엄마. 발자국이 있어. 브로콜리 발자국이야.”

 

 조그만 브로콜리 잔해들이 끈끈한 밥 위에 그대로 붙어 있다. 그대로 먹으면 좋으련만 발자국을 없애달라며 조르는 별이. 별이의 말이 너무 사랑스러워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밖에 없었던 엄마. 그래서 오늘 점심도 채소 먹이기에 실패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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