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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Feb 10. 2021

질문의 끝

아이에게 배우는 세상 - 성장의 기록

© StockSnap, 출처 Pixabay



- 엄마, 저게 뭐야?

- 응, 가습기야.

- 가습기가 뭐야?

- 건조하지 않게 해 주는 거야.

- 왜 건조해?

- 난방을 했으니까~

- 왜 난방을 했어?

- 겨울이라 추우니까!

- 왜 추워?

- 지구랑 태양이 멀리 떨어지게 됐으니까.

- 왜 떨어져?

- 지구가 태양 주변을 크게 도니까 그래.

- 왜 돌아?

- 음...







- 엄마, 여기 이거 왜 붙여놨어?

- 응, 곰팡이가 슬어서 그래.

- 왜 곰팡이가 나와?

- 오래된 집이라 그렇지.

- 왜 오래돼?

- 시간이 흘러서 그래.

- 왜 흘러?

- 음...






'왜'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말문이 막힐 때가 생긴다. 최대한 끝까지 설명해주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는 질문들이 나온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나는, "음... 그냥 그렇게 되어 있어. 그렇게 되어 있어서 그런 거야."라고 황급히 끝을 맺는다. 물론 그걸로 끝나지 않고 "왜 그렇게 되어 있어?"라는 질문을 다시 받게 되지만.




어느 날부터는 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루돌프 사슴은 코가 반짝반짝해."

"응, 맞아! 어떻게 알았지?"

"하느님이 그렇게 만들었거든!"


아이가 스스로 하느님을 알게 되었을 리는 만무하여 어떻게 알았냐고 질문하니 할머니가 가르쳐주셨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아이를 보러 온 엄마께 어쩌다가 이 말이 나왔냐고 물으니, 별이가 자꾸 질문을 하는데 도저히 설명 못 할 것까지 물어서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같은 경험을 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교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가톨릭교도지만, 영성이나 의식의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믿고 기도하는 '대상'보다 믿고 기도하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절대적 존재 앞에 겸손하고자 하는 자세와 간절한 바람이 방향과 의도를 만들고, 그 의도가 행동으로 이어지면 바라는 현실이 창조된다는 개념으로 말이다. 그 후로는 성당이든 교회든 절이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느님과 하나님마저 구분하여 피아를 가르는 것도 의미 없다.



별이의 질문에 답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나 시간이 흐르는 것은 그 근원을 설명하기 몹시 힘든 일이다. 40이 다 되어가는 나나 이미 60을 넘기신 엄마도 '왜'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저 그럴 뿐. 그냥 그런 것일 뿐. 머리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사람들은 신의 이름을 붙였나 보다. 위대한 존재가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기에 그의 법칙과 뜻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아이를 가지기로 선택하자 별이는 수많은 엄마들 중 나를 선택해 세상에 왔다.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나는 사랑을 배우게 됐다. 한동안 일찍 죽는 것을 갈망해 온 사람이지만, 아이를 만나고 나서는 쉽게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인생관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미숙한 존재가 세상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역할이 내게 주어졌고 그걸 기쁘게 또는 버겁게 받아들인다.



별이는 "엄마는 왜 바뀌었어?"라고 질문할 것이다. 나는 어물거리며 답을 이어가다가 결국 "그냥 그렇게 된 거야."라고 마무리할 것이다. 사랑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널 만나기 전에는 몰랐단다. 산들바람을 느끼려면 창문을 열어야 하듯이, 아이를 만나기로 선택하자 어떤 인생의 방향이 내게로 밀려 들어왔다. 누가 이 놀라운 일을 관장하고 이끌어가는지 몰라서 나는 결국 신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도와 선택이 엄마와 별이를 만나게 했으므로 그 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조심스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만들고 시간을 흐르게 하고

별이와 엄마를 만나게 한 존재는

우리 안에 있단다.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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