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방문하는 일은 늘 긴장과 두려움이었다. 이런 감정을 숨기고 낯선 것을 즐기는 척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집에 돌아오면 후폭풍 몰아치듯 피곤이 몰려왔고 그걸 진화하는 데에 여러 날이 걸렸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어린 시절부터 여기저기 ‘끌려다님’을 당해 온 데다가 낯선 장소에서 얻는 즐거움도 오롯이 느끼지 못하다 보니, 여행조차 내게는 즐거움보다 버거움을 줬다. 떠나기 전의 설렘과 다녀온 후의 피로를 비교해 보자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무거웠다. 자연스럽게 익숙한 것만 찾는 사람이 됐다.
엄마는 여행을 좋아했으나 겁이 많았다. 특히 해외라면 자유여행은 언감생심, 늘 여행사에서 구성한 패키지 코스를 신청해서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는 여행을 했다. 코스에서 이탈할 자유나 식사 메뉴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밋밋한 여행이었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우리 가족은 얼른 씻고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 일정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패키지로 묶인 다른 여행객들은 택시를 불러 번화한 거리로 나가 관광과 유흥을 즐겼으나, 우리는 50m 떨어진 현지 가게에 가서 마실 것 하나 사 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엄두조차 못 냈다. 어쨌든, 모녀는 그런 식으로만 아주 조금씩 견문의 외연을 넓혀갔다.
겁쟁이 모녀의 첫 번째 일화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있었다. 그날 엄마는 꼬물거리는 나를 안고 TV를 보고 있었고 거기에는 무장공비가 남침했다는 속보가 뜨고 있었다. 개인 전화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니 어디에다 도움 청할 데도 없고,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속보가 울리는 상황에서 엄마가 붙잡을 것은 나뿐이었다. 그러니까, 나라 해 봤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생후 일 년도 안 된 작은 아기뿐이었다는 거다. 낯선 상황에서 느끼는 극단의 공포에 머리에 뿔 달린 군인들이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차고 들어와 위협을 가하리라는 공포 – 후에 나는 이것을 학습효과라 부른다 – 까지 엄습하던 그날에 아직 이십 대 중반밖에 되지 못했던 어린 엄마는 작은 아기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그 조그만 것하고 같이 있는데 이상하게 위안이 되더라. 덜 무섭고.”
엄마는 신기했다. 도리어 내가 목숨 걸고 지켜야만 할 이 작은 존재가 어떻게 나의 공포를 경감시켜주는 것인지. 그것이 각오에서 나오는 용기인지 모성애를 관장하는 호르몬의 힘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이 엄마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서른 살이 훌쩍 넘어 출산했지만, 그때의 엄마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새가슴의 소유자다. 시간이 지나며 낯선 상황을 일부러 견딜 필요가 없는 자리에까지 겨우 오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별이가 자라고부터는 매주 주말마다 나들이를 나가고는 했는데 여행이나 외출을 맘껏 즐기기 힘든 상황인 데다가 멀리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의 성격까지 겹쳐,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늘 공원이나 놀이터, 멀게는 천변이나 수목원까지 가는 것이 우리의 행동반경 전부였다. 아이 아빠가 큰 맘을 먹어야 차를 끌고 교외로 나갈 수 있었다. 별이는 멀리 나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비 오는 주말, 별이네 가족은 탁 트인 경치를 보러 여기저기를 떠돌다 그만 도로를 잘못 타고 만다. 사방이 어둑해질 때까지 내비게이션의 경고 음성 – 이 길이 아니라는 - 을 들으며 나들이했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휴게소 안내가 뜨자, 아이 아빠는 저쯤에서 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가자고 했다. 온갖 연령대와 다양한 구성으로 묶인 방문객들이 많았다. 아, 낯선 환경이다. 휴게소 직원이 식당 의자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합 금지 규정으로 6시부터는 테이블당 두 명씩만 앉을 수 있다고 했다. 아이 아빠는 이 김에 좀 쉬고 오겠다며 차로 갔다. 온종일 운전을 했으니 피로가 극심했을 테다. 별이와 나만 식당 자리에 앉았고 별이가 좋아하는 설렁탕을 시켰다. 조미료가 듬뿍 들어가 인공적인 맛을 내는 설렁탕이었다. 주변에 들어차 있던 사람들은 6시를 기점으로 썰물 빠지듯 휴게소를 떠났다. 이제 이 공간에 있는 것은 드문드문 앉아 있는 방문객들과 휴게소에 고용된 사람들뿐이었다. 아, 낯설다. 정말 낯설다.
서울 근교의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설렁탕에 밥을 말아 후후 불어 별이에게 먹이는데 아주 잘 먹는다. 집에서는 먹어 볼 일 없는 자극적인 맛이라 그랬던 것 같다. 소면도 끊어서 먹였다. 별이는 ‘엄마, 너무 맛있어요.’라며 방긋거리며 식사했다. 창문 밖에는 여전히 비가 추적거리고 있었다. 난생처음 와 보는 곳, 어디에서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별이와 있었다. 문득 이 낯선 상황이 내게 더는 공포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별이 손을 잡고 아이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있는 지금이 그저 행복하다 느껴질 따름이었다. 맞잡은 별이 손에서 큰 힘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다.
별이는 재잘거리면서 자기 몫을 다 먹은 후, 달콤한 것을 사 달라고 했다. 방향을 몰라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고 그곳은 비를 막을 수 있는 지붕이 없었다. 하나, 둘, 셋을 외치고 전력 질주로 편의점 문까지 달려갔다. 주변은 전등불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 주유소 쪽에 켜 놓은 밝은 조명등 덕에 빗줄기의 세기가 가늠됐다. 별이와 나는 깔깔거리며 편의점까지 달려가 주스를 샀다. 다시 나오는 길에 여전히 비는 내리고, 주차장에서 쉬던 아이 아빠가 차에 시동을 걸어 입구 쪽으로 나오기까지 십분 남짓한 시간을 별이 손을 잡고 비를 피해 서 있었다. 여러 사람이 우리를 스쳐 가고 다시는 올 일 없는 휴게소의 간판이 깜빡거렸다. 나와 어떤 인연도 아닐 가족들이 큰 차를 타고 우리 곁을 지나갔다. 흡연 공간을 벗어나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을 지나쳤다.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과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지나쳤다. 조금 지나 별이와 내 앞에 우리 차가 도착했다. 우리 차는 천천히 어두운 휴게소를 벗어났다. 한 시간 동안 만난 모두가 스치는 사람들이었지만 나와 별이는 여전히 함께였다. 이 사실이 주는 안정감이 대단했다.
“별아. 엄마는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있는 걸 되게 무서워하는 사람인데…. 너랑 있으니까 하나도 안 무섭고 재밌기만 하다. 신기하네.”
설렁탕을 먹이며 내가 하던 말에 별이는 이해할까. 나는 삼십여 년 전에 갓 태어난 나를 안고 있으니 그리 무섭지 않았다던 엄마를 그제야 이해했다. 작은 존재가 가진 힘. 그것은 너와 내가 낯선 상황 속 ‘동반’이 당연한 관계이며, 우리 사이에 헤어짐이나 낯설어짐이 개입할 확률은 현저히 낮다는 것을 전제한다. 너에 대한 감사와 책임감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너와 함께 할 많은 날이 더욱 기대된다. 아마, 별이는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sunj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