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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Oct 13. 2021

프로를 만나는 즐거움

잘 하는 필라테스 강사를 만났다




© jordannix, 출처 Unsplash



지난여름, 아이 아빠가 준비하던 시험을 포기하면서 나의 저녁 시간에도 여가가 생겼다. 별이 없이 하고 싶었던 일 첫 번째는 운동이었다. 넉 달 동안 성실히 다니다 별이 임신을 기점으로 그만두었던 필라테스를 다시 하기로 했다. 집 주변에 있는 필라테스 짐을 찾아보다가 이 많은 곳이 언제 생겼나 싶어 지난 세월이 허탈해졌다. 더 일찍 했어야 했다. 아이 아빠 시험 끝나면, 내 일에 여유가 생기면, 별이가 좀 크면, 이런 핑계는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었다.




운동할 수 있는 곳이 워낙 많으니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친절한 상담과 프라이빗한 공간도 좋았지만, 예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던 터라 집 가장 가까운 곳의 대형 운동센터에 등록하기로 했다. 헬스와 GX와 골프와 필라테스 공간을 한 층 안에 꾸며놓은 곳이었고 락커룸과 샤워실도 있었다. 매주 이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많은 종류의 회원제 시설이 그렇듯 여기도 한 번에 몇 개월씩 사전 등록해야 할인율이 높은 곳이었지만 어떤 강사를 만날지 몰라 두 달만 등록하기로 했다. 처음에 원하던 요일은 이미 수강생이 꽉 차 있어 다른 날짜로 이름을 올려놓고 자리가 나면 바로 이동하기로 이야기가 됐다.




그리고 첫 운동 날. 제대로 ‘조져 짐’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확인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길을 건너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이 반으로 일단 넣어드릴 건데요. 선생님이 좀 빡센 분이세요. 해 보시고 너무 힘들면 말씀하세요. 시간대를 좀 바꿔 드릴게요.”




등록 데스크에서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오랜만의 운동에 내가 적응을 못 하는 것인지 의아하면서도 매번 온몸을 쓰고 오는 기분이 꽤 좋았다. 운동 내내 땀을 뻘뻘 흘리고 자비 없이 근육을 쓰다가 돌아오는 길은 운동 횟수가 거듭되며 점차 나아졌다. 조금씩 몸에 힘이 생겼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탄탄한 근육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은 개인 일정 때문에 2회 간 다른 클래스로 운동하러 간 적이 있다. 그 시간대 강사는 애교 섞인 말투로 회원들을 구슬리며 운동을 시켰는데 이미 1년 남짓 함께 했다는 클래스여서 수강생들과 강사가 매우 친해져 있는 상태였다. 강사는 하다가 힘들면 동작을 멈추게 하기도 하고 열 카운트를 셀 때도 재빠르게 세어주는 등 센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우리 마스크 쓰고 운동하는 거 쉬운 거 아니잖아요? 이번 동작은 쉽게 가요~”




그날은 땀도 빨리 식고 팔다리가 떨리지도 않았다. 숨이 차지도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굳혔다. ‘우리 선생님’ 클래스로 돌아가야지.





선생님은 프로다. 내가 정의하는 프로는 자신한테 주어진 시간에 정성을 쏟으며 자기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다. 특히 다른 이에게서 ‘돈을 받고 하는 일’에는 그 돈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프로는 자기 일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다. 무엇이든 함부로 하지 않는 자존심이 있다. 50분 남짓한 클래스 동안 선생님은 단 1초도 쉬지 않는다. 열 카운트를 세고 부족하면 스무 카운트를 더 센다. ‘열 번 더!’라는 외침에 수강생들은 죽겠다는 표정을 하지만, 그 열 번을 더 채우고 나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뿌듯함이 온다.



선생님은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다. 말투도 살가움보다는 무뚝뚝함에 가깝다. 웃는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수강생에 대한 예의를 지키되,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정신 차리라고 한 마디씩 혼을 낸다. 왜 ‘빡센 분’이라고 불리는지 하나하나 이해된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도 선생님의 장점이다. 클래스는 대부분 정시에 시작하여 그 시간을 꽉 채워 끝난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많이 두지도 않는다. 운동을 하면서 등록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두 달의 등록 기간이 끝날 무렵, 처음에 원했던 요일에 한 자리가 났으니 옮기겠냐고 물었다. 듣자마자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생님, 혹시 0요일에도 하세요?”




그날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 정도 고민하다 나는 데스크에 반을 옮기지 않겠다고 말하며 추가 등록을 했다. 넘쳐나는 필라테스 학원에, 넘쳐나는 필라테스 강사에, 이만큼 운동에 만족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를 만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세상에 프로 타이틀을 단 비전문가가 너무 많음을 통탄하곤 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에 만난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그랬다. (어찌 자격증을 땄으니 중개소 열고 영업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정보의 경중도 따질 줄 모르고 일정 관리도 못 하는 사람이 무슨 양심으로 몇억 씩 오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프로를 만나게 되면 쾌감이 들 정도다. 내 운동이니 스스로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선택한 장소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된 프로 KJH 선생님! 당신의 프로정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은 정말 귀한 사람이에요. 앞으로 남은 수업일 모두 잘 부탁해요. ©️sun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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