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미술계 일원으로 거듭나기
얼마 전에 떠오른 생각인데, 10+년을 넘어가는 내 프랑스 생활 중 학생으로 지낸 기간이 얼마였을까 세어보니, 햇수로 8년이더라. 그야 미대에서 3년을 다니다가 전공을 옮기면서 2학년으로 편입하고 석사 2년을 다녔으니까 그 정도 되겠다. 그 중에서도 참 즐거웠던 시절이 바로 석사 2학년이었던 것 같다.
파리 3대학에서 석사 논문을 한창 쓰던 도중, 석사 마무리를 위해 나는 열심히 편입 지원할 대학원들을 몰색했다. 그러다 결국 학사를 지냈던 예술경영학교 중에서도 Mastère professionel, 석사 2학년에 해당되는 MBA 같은 코스를 발견하고 등록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나처럼 석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원한 20대 초반 학생들부터 다른 직종에서 종사하다가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어 등록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처럼 미술 전공을 한 이는 찾기 어려웠고 다들 옥션사에서 일하고 싶다거나 본인의 갤러리를 차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서 20대 중반-후반을 달리면 5-6명의 학생들은 휘리릭 분위기 파악을 하고는 똘똘 뭉쳤다.
거기에는 갓 학사를 끝낸 22살 막내, 연극/극장연출 전공 출신 극E 친구, 법대 출신으로 갤러리 사업을 기획 중이던 28살 친구, 사진 전공 출신을 살려 포토그래퍼 일환으로 기획 공부를 하고 싶다던 26살 친구, 요식업 일을 하다가 미술계 쪽에 호기심을 갖고 들어온 29살 몽마르트 토박이, 프랑스 엘리트 비즈니스 스쿨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24살 금발머리 친구, 멕시코 출신으로 아티스트 네트워크가 많던 친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먼나라 한국에서 날아와 미술전공에 편입에 석사 편입까지 거친 내가 있었다.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난 경험들이 처음이라 다들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했던 분위기였다. 이 과정의 특수성 때문인지, 15명 남짓되는 인원 중에서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우리 그룹의 핵심 멤버는 나와 포토그래퍼, 몽마르트 토박이, 연극 전공자, 법대 출신 친구였다.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이었지만 우리는 굉장히 똘똘 뭉쳐서 잘 지냈다. 강의실에 같이 앉아 떠들고, 전시회도 같이 다니고, 술도 여러번 먹으러 가고, 집에 놀러가서 하우스파티도 하고. 워낙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프랑스 정서도 한몫했고, 석사 1학년을 거치면서 적당한 개인주의를 학습한터라 예전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좋은 친구들이 생긴 게 참 즐거웠다. 나는 그 무엇보다 석사 학위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냥 강의 잘 듣고, 학우들과도 잘 지내고, 친구들에게는 잘해줘야지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소개를 통해 어느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은 한국인이면서 해외에 오래 살았고, 그곳에 자기 이름을 내건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인턴십도 그렇고 이제 슬슬 취업 걱정을 하던 나에게 그 분은 자기 밑에 어시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내 대답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YES였다. 드디어 갤러리 인턴에서 갤러리 직원으로 승격(?)하는 순간이었다. 갤러리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 있었고, 필요한 업무는 주로 서류작업과 이메일에 가까웠기 때문에 원격으로 할 수 있었다. 이보다 좋은 조건이 어디있담? 그렇게 파트 타임으로 시작한 업무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꽤 초창기부터 바빴다. 때문에 지루하거나 그닥 도움되지 않을 것 같은 강의가 있는 날이면 강의를 빼먹고 일을 하기도 했다.
주로 하던 업무는 노트북 하나로 가능한 일들이었다. 갤러리가 소장한 작품들을 인벤토리로 정리하고 한데로 저장해두는 데이터베이스 툴이 있었는데, 디렉터가 지시하는 대로 새 작품 정보를 입력하거나, 누락된 정보를 채워넣거나 (제작 연도, 사용된 재료 등), 각 아티스트별로 인벤토리 호수를 정리하거나 (흔히 생각하는 SKU 정리라고 보면 되겠다) 몇몇 작품들만 보아 리스트로 출력하는 등이었다. 그 외에는 이메일 업무 서포트, 갤러리 뉴스레터 작업 정도가 있었나. 초창기에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딱 좋은 정도였다. 어릴 적부터 덕질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소질있던 필자에게 정보 수집과 정리는 내집처럼 편안했다. 별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공부 외에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마냥 좋았다. 10년 넘게 공부, 또 외국어 공부만 주구장창 하다가 경제활동을 하는 스스로가 참 뿌듯했다. 뭐랄까, 사회생활의 맛(?)은 학생일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보람찼다. 강의와 일을 병행하는 게 때로는 쉽지 않았지만 그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응해나가는 일이 참 즐거웠던 것 같다. 덕분에 인턴십 기간이 다가와도 나는 그냥 하던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으니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렇게 순조로울 줄만 알았던 내 첫 직장생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