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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Oct 23. 2023

소설을 쓴다는 건


가장 좋아하는 책 장르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소설'이라고 답한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는 해리포터를 쓴 J.K 롤링이며, 그다음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나는 작가이기보다 소설가이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지만, 소설이라는 건 생각처럼 쉽게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며 고군분투했는가를 직접 소설을 써보면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에세이가 쓰기 쉽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에세이만 해도 쓰고 퇴고하는데만 1년이 걸렸으니까. 책을 쓴다는 건 어마무시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나 소설은 차원이 달랐다. 보잘것없는 나의 첫 장편소설을 쓰는 데만 1년이 걸렸고, 퇴고와 출판까지 2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참담했다. 지인들 덕분에 200여 권의 책은 호기롭게 판매되었지만, 남은 300권은 고스란히 기증되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었다. 판매되지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마케팅 탓, 출판사 탓을 했다. 그리고 알아봐 주지 않는 독자 탓을 하기도 하며 어리석고 후회되는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첫 술에 배부르고자 하는 내 모습을 직시하게 되었고, 못난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설을 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을 쓰면서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과 어쩔 수 없이 내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직접 그 혹은 그녀가 되어보면서 내가 만든 허구 속에서 나는 또 다른 한 인간으로 재탄생한다. 그렇게 나는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분노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며, 희망을 찾기도,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다양한 인물의 심리와 환경을 그려내다 보면 오직 나에게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타인에게로, 사회로 향하게 된다. 똘똘 뭉쳐진 자의식으로 오직 내 생각에만 갇혀있던 나는 비로소 바깥으로 얼굴을 내민다. 여전히 잔뜩 겁먹은 얼굴로.


그러나 소설을 쓰기 전과 후의 나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마치 엉키고 설킨 낚싯줄처럼 내 안에 꼬여있던 것들이 소설을 통해 서서히 풀어지는 게 보인다.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것들은 언제고 내 안에 남아 더욱 꼬이고 엉켜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으리라. 처음에는 그저 쓸모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팔리는 권수에만 집착했고, 쓰디쓴 실패의 맛을 본 거라 치부하며 소설을 쓸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쓰는 과정이었다. 결과가 어떻든 그토록 쓰고 싶었던 장편소설을 펴냈고,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나 자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여전히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관심받지 않으면 상처받는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것을 계속 써 나간다면 언젠가 롤링이나 하루키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되지는 않더라도 나 자신에게 떳떳한 소설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 공모전은 번번이 탈락하고, 브런치에 올릴 용기는 아직 없으나 멈추지는 않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꾸준히 쓰는 것, 그리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올 미래대신 내 앞에 주어진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게 지금 나를 가장 충만하게 한다. 소설가라고 해서 꼭 등단해야만 하고, 문장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멈추지 않고 소설을 써 나가는 사람, 소설을 쓰는 과정이 즐거운 사람. 그런 사람이 소설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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