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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Oct 18. 2023

인간의 하극상

오래되고 낡은 점집 앞.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 옆에는 온갖 음식물 쓰레기와 각종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그것들은 종종 바람에 휘날리거나, 심각한 악취를 풍긴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나가며 코를 막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등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거나, 버려진 박스를 무자비하게 찢어 부채처럼 쓴다. 찢은 조각을 자랑스럽게 얼굴 쪽으로 올려 마구 부쳐댄다. 마치 자신이 만든 창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고 하극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4-50대로 보이는 표정이 없는 여자가 수레에 잔뜩 폐지를 싣고 지나간다.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길에서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폐지를 줍고 있다. 수레를 끌던 여자는 쏜살같이 달려가 할머니 손에 들려있던 폐지를 빼앗는다. 할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쳐보지만, 이미 수레와 여자는 저 멀리로 도망치고 난 후였다.


인간의 하극상이란 폐지를 줍거나, 박스 조각으로 부채를 부치는 행위가 아니다. 약자의 것을 갈취하고 쟁탈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하찮은 삶을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살다 죽음 앞에 섰을 때, 그 여자의 수레 안에는 폐지보다 더한 오물로 가득 찼으리라. 수레의 이름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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