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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Kim Mar 04. 2022

그래서 나의 퇴사일은 언제 인가하면

이 정도면 됐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출근하는 거의 모든 날, 나는 퇴사를 꿈꾼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가슴에 품고 다닌다는 퇴직원을 나 역시 품고 다녔다.

처음에는 8시 출근이 힘들어서,

유난스럽게 근태가 중요한 조직 문화로 

매월 말이면 경고 메일을 받아야 해서,

새로운 일이 부담스러워서

익숙해진 일이 지겨워져서

비전을 제시 못하는 실장 때문에

진가를 몰라주는 것 같은 상무 때문에

어제는 이래서

오늘은 저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300일이면 300개의 매일 다른 퇴사 욕구가 있었다.


그렇게 퇴사 욕구를 누르며 다닌 세월이 15년이다.


15년 퇴사의 욕구를 다잡은 이유 역시 매번 달랐지만,

많은 경우는 퇴사가 너무 쉬워서다.


어떤 벽에 부딪쳐 퇴사 욕구가 들 때마다 퇴사를 실행하기에는 

퇴사라는 옵션은 실행이 너무나 간단했다. 

쉬운 해결책 말고 다른 해결책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시간이 지나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15년이 흘러 존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15년째 현재 진행형인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잦은 이직, 퇴사를 경험하며 

짧은 시간 동안 여러 형태의 실패하는 회사들을 목격했고

이럴 거면 창업이나 해보자며, 망해도 젊어서 망하자는 생각으로 겁도 없이 회사를 차렸다. 

다행히 망하지는 않았지만 고독했고, 

그렇게 3년을 내 사업을 하다가 지금 이 회사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업무들이 혼자 사업을 하던 시기에 비하면 

... 쉬웠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볼 사람도 있고, 

결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함께 외근 나갈 사람도 있고, 

책임지는 사람도 있었다. 


고비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팀장이 되었다.

2011년 팀장을 달았으니 팀장질도 이제 10년이다.

처음에는 1인 팀장으로 4년이라 팀장이어도 이름만 팀장일 뿐.

리더십이란 걸 그다지 발휘할 기회나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한두 명씩 팀원이 늘더니 13명의 팀원을 가진 제법 큰 팀이 되었다. 

팀원들이 많아지니 퇴사는 더욱 쉽지 않았다. 

팀원들이 늘어나는 수만큼 그 무게가 퇴사 욕구를 눌러주었다.. 

한 명 한 명에게 책임감이 느껴지고 함부로 그만두기도 쉽지 않았다. 

팀원들의 마음은 알 수 없으나 어찌 됐건 회사 안에서도 팀워크가 좋은 팀으로 소문이 났고 

팀원들의 이직이나 퇴사도 없었다. 


15년을 한 회사에 머물다 보면,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결국은 안주하게 된다. 

편해지고 성장이 둔해진다. 

회사와 개인이 함께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회사와 개인이 함께 늙어가기 마련이다. 





한때 사업부에 평판이 별로 좋지 못한 부장 한분이 계셨는데 

사업부 내에서 가장 연봉이 높다던 그분은 대부분의 근무 시간을 

신문을 보거나 주식창을 보며 때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IPO를 두 번이나 경험하며 스톡옵션과 우리 사주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자자 했다. 

나이도 가장 많으셔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그분이 퇴사하고 9급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치열하게 업무만 하던 우리들은 바보라며 직장인은 저래야 한다며 

다들 진심인지 농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웃었다.   

 



나의 퇴사병은 이제 계기가 없다. 

이직이나 돈도 아닌 것 같다. 

이제 타이밍의 문제가 되었다. 


화가는 그림을 언제 끝낼까, 언제 붓칠을 멈추면 되는지 어떻게 알까 

이 정도면 됐다는 것을.. 


그래서 나의 퇴사일은 언제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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