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첫 수업, 그리고 신참내기의 고군분투

[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by 선경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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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00년 3월 1일자로 ○○중학교에 신규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교지에 실을 교직 첫해 소감을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임용고시 2차 면접 질문을 떠올리며 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교직에 들어온 나의 소감을 적었다. 그 파일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그 때 블로그를 했다면 거기에 다 모아두었을 텐데 아쉽다. 이런 데에서 일상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임용에 합격만 하면 내 인생이 탄탄대로 걱정할 것 없이 순조롭기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출근을 하고 나니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 3월 2일 역사적인 그 날, 부푼 꿈을 안고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첫 수업시간 교실에 들어갔을 때 그 때의 충격이란! 내가 상상하던 교실과 아이들이 아닌, 나를 무시하고 한 시간 잘 놀아보겠다는 듯이 앉아 있는 아이들과의 만남이었다.

교과서도 미리 받지 못했고, 수업을 뭘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첫 시간은 내 소개를 하고 학생들 소개를 받는 시간으로 보내기로 마음먹고 교실로 들어갔다. 당시 근무하게 된 학교는 한 학년 전체가 11반까지 있었다. 남녀공학이지만 여학생 3반 남학생 8반, 남녀 분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였다. 발령 첫해에는 담임 보직이 없었다. 수업은 2학년을 맡았다.

2학년 남학생 반에서 첫 수업을 하던 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며칠 동안 고심해서 만들어 외우다시피한 자기소개 멘트를 영어로 날렸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안녕하세요. 최선경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정도이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 예쁘네. 우후~’ 뭐랄까 내가 희롱당하는 느낌? 그런 상황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다. 내가 출근 첫 날 첫 수업에서 그런 취급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날 45분 수업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내 소개와 학생들 소개가 모두 끝나고 나서도 수업 시간이 5분 정도 남았다. 내 몸을 어디 두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업 준비와 수업 운영에 미숙한 내 탓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임용준비를 하면서 평소 상상했던 그런 교실 장면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학생들은 다들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남학생들은 덩치도 나보다 훨씬 더 컸고 인상도 다 험악해보였다. 특히 중학교 2학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북한이 중2 애들 무서워서 우리나라에 못 쳐들어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아닌가!

임용고시만 통과하면 학교에 출근만 하면 내 인생이 달라지고 매일 매일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처음 해보는 업무에 처음 해보는 수업에 처음 해보는 학생 지도에 힘들어서 출근 첫 주에는 집에 가면 8시도 못 넘기고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긴장도 많이 하고, 수업 하느라 1층에서 4층, 4층에서 1층으로 몸도 많이 움직여서 그랬으리라.

첫 수업한 반에서 ‘우후~ 어디 한 번 놀아보자’라는 분위기를 겪고 나서 ‘아, 이건 뭔가 잘못되었구나. 애들한테 너무 만만하게 보였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시간부터는 아예 노선을 바꾸어서 정색을 하고 학생들에게 무섭게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당시는 학생 체벌이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상황이라 주변 선생님들이 매 하나씩을 다 들고 다니던 상황이었다. 선배교사들이 신규교사들에게 매를 선물로 주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도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동네 문구점에 가서 매로 쓸 만한 장구채를 하나 구입했다. 학생들이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떠들 때마다 장구채로 교탁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위협했다. 그렇지만 만만한 내 첫인상이 너무나 강했던지 아무리 무섭게 말을 하고 때로는 아이들 손바닥을 때리기도 했지만, 내 말을 잘 듣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너무 화가 나서 한 학생을 불러서 손바닥을 때린 적도 있다. 그러고 나서는 또 미안해서 학생을 불러서 달래고 사과했던 기억도 난다. 눈물까지 보이니 학생들이 얼마나 더 만만하게 봤을까? 한동안 수업도 수업이지만 학생들과의 주도권 싸움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매 시간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내 말을 듣게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도전 과제였다.


<미국에서 1년 살다가 온 학생과 나눈 대화>

“선생님~ 장애인이 영어로 뭐에요?”

“글쎄, 그건 지금 수업 내용과는 관계없잖아.”

“아~, 우리 엄마는 내가 물어보면 바로 바로 다 대답해 주는데 선생님은 잘 모르시나 봐요.”

“그 단어 가지고 애들 놀리려고 하는 거 내가 다 알거든. 그래서 알아도 안 가르쳐 주는 거야.”


“선생님~, 저 단어 어떻게 읽어요?”

“which. 너희들 다 알고 있는 단어 아니니?”

“그런데 선생님 불어 전공해서 그런지 영어 발음이 좀 이상하네요.”


일부러 선생님이 곤란해 할 질문을 골라서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딱 봐도 신참 냄새가 나는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적응하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그 때는 아무리 인상을 쓰고 무서운 척을 해도 도통 말이 먹히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어떻게 학생들이 내 말에 집중하고 듣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발령 동기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우리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무섭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우리말을 잘 듣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들을 자주 나누었다. 대학의 정규 수업에서나 임용고시 준비 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학생들과의 관계 맺기가 제일 어려웠다. 신규 첫 6개월이 너무나 힘들었고, 교직생활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래도 항상 말을 안 듣는 학생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다루는 스킬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교사라서 아이들과 세대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나에게 쉽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과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가서 일출을 보기도 하고 놀이공원에 가기도 하고 영화관이나 노래방을 가기도 했다. 신규발령을 받았을 즈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걸 그룹이 있었다. 그 멤버 중 한 명과 닮았다며, 유난히 나를 따랐던 여학생도 있었다.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그룹 CD를 선물하기도 하고 십자수로 쿠션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학생이 나를 좋아하니 주변 친구들도 자연스레 나를 잘 따르게 되었다. 한동안 남학생 반에 들어가기는 싫었지만 여학생 반 수업은 부담이 덜했다. 영어 시험을 치면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 평균이 20점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공부 자세나 수업 분위기가 참 많이 달랐다. 그나마 여학생 반 수업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학생들은 나를 선생님이 아니라, 그저 자기 또래 친구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런 친근함은 신규교사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첫 발령지는 지역에서는 규모가 꽤 큰 학교에 속했다. 소위 말하는 일급지라서 경력이 많은 교사가 주로 근무하는 곳이었다. 당시 업무 부장을 맡은 분들은 거의 50대 교사들이었고, 부장이 아니라도 40,50대 교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 같은 초임교사 발령이 흔치 않은 학교였지만, 그 해에는 예외적으로 나를 포함하여 총 5명의 신규교사가 발령을 받았다. 그나마 동기들이 있어서 학교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함께 나누며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우리 신규 5명은 어느 학교에나 있는 처총모임(처녀 총각 선생님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모이곤 했다. 주말에 1박 2일로 우리끼리 엠티를 가기도 하고, 평일 저녁에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등 마치 대학교 동기들처럼 친하게 지냈다. 그 때 같이 발령 받았던 신규교사 동기들은 아이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 간혹 토요일 1박 2일 엠티를 갈 때는 선배 교사들이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했다. 저녁 식사 자리도 자주 마련해주시며 우리의 힘든 학교생활을 많이 위로해 주셨다. 마치 복학생 선배들이 신입생을 챙겨주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동기들이나 선배 교사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을까 싶다. 그 때 그 선배 교사들을 다시 만나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가끔씩 다른 학교에 수업개선 관련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2년 전 모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강의를 들었던 선생님 중 한 분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아는 척을 했다. 첫 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이 어느덧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을 이야기하는데도 중학교 때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매치가 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장난치다가 매번 혼나던 학생이었다. 나를 보며 그 선생님이, 아니 그 학생이 ‘선생님, 요즘도 아이들 때리세요?’라고 묻는데 좀 부끄러웠다. 멋쩍어 하며, ‘아니, 요즘은 안 그러지’라고 하니까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성적 많이 올랐었어요. 덕분에 저도 선생님이 될 수 있었어요. 저도 아이들 많이 혼내요’라며 웃었다.

요즘은 체벌이 아예 금지되어 있지만, 내가 신규교사 시절만 하더라도 때려서라도 아이들을 바르게 지도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선생님한테 혼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겪은 학생들도 있겠지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후회가 된다. 좀 더 학생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나이가 든 요즘은 많이 길러지긴 했지만, 인간관계는 언제나 어려운 것이라서 더 많은 수련이 필요할 것 같다. 교사도 인간이다.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 하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친절함과 단호함을 함께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전공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을 대학교 정규수업에서나 신입교사 연수에서도 함께 나누고 다루었으면 한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02.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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