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영어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영어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어찌 보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량은 뭘까?
끈기, 과제집착력, 꾸준함, 성실함, 대인관계능력, 배려, 존중, 문제해결력, 도전정신, 성찰, 자기 언어로 표현하기(스토리텔링), 자신의 경험에 의미 부여하기, 공감하기, 자기관리, 시간관리, 절제, 협력 등을 학생들이 갖추기를 바란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어떨 때 학생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다. 공부를 못하고 잘하고를 떠나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 무기력한 학생을 보면 가장 안타깝다. 아마도 정성을 다해 사소한 일에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바로 한 자리에 일정 시간 앉아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태도와 자세인 것 같다. 물론 예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학생들의 집중력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아마도 휴대폰 사용과 자극적인 영상을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짐작한다.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뭔가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여 주고 싶어서 담임 반 학생들과는 다양한 형태로 읽고 쓰기를 한다.
2018년에는 학기 초 성장일기와 배움일기를 쓰도록 하고 있다. 성장일기에는 매일 아침 한 장의 가치카드를 뽑아서 필사를 하고 자신의 실천다짐을 쓴 후 감사한 일 3가지를 적게 한다. ‘우리 반 10계명’도 필사하도록 한다. 2017년에도 학기 초부터 게시판에 10계명을 게시하고 강조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10계명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을 관찰했다. 2018년에는 학생들이 매일 10계명을 볼 수 있도록 책상 위 이름표에 시간표와 함께 10계명을 붙여두었다.
<1-3반 10계명>
● 3반은 정직하게 행동한다.
● 3반은 정리정돈을 잘한다.
● 3반은 시간 관리를 잘한다.
● 3반은 사소한 것에도 정성을 다한다.
● 3반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행동한다.
● 3반은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
● 3반은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예의를 갖춘다.(긍정마인드 장착!!!)
● 3반은 실수를 인정한다.(틀려도 괜찮아~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 3반은 배워서 익힌 것을 실천한다. 나부터 실천한다. 꾸준히 실천한다.
● 3반은 나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우리 반 10계명을 정하게 된 계기는 레이프 에스퀴스의 『당신이 최고의 교사입니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3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금은 퇴직하여 자신의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분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그 작품을 학생들이 공연하도록 한다. 2016년 겨울 방학 교사 연수 참여를 위해 이 책을 읽고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에스퀴스 선생님을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바람이 터져 나왔다. 그 날의 바람 덕분에 몇 달 후 연수를 주관한 단체에서 레이프 에스퀴스 선생님을 한국에 초청하게 되었다. 운 좋게 에스퀴스 선생님을 직접 만나 책에 사인도 받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이후 메일을 주고받으며 내 꿈이 자발적인 교사 전문학습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거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가진 꿈을 꼭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주기도 하셨다.
겨울 방학 연수에서 에스퀴스 선생님의 교실에서 지켜지고 있는 10계명을 읽고, 각자 자신의 10계명 만들기 활동을 하였다. 2017-2018년 내가 아이들에게 나누어준 10계명은 당시 생각했던 10계명을 좀 더 다듬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10계명이 내가 학생들에게 길러주고 싶은 역량일 것이다. 다른 교과 지식들은 둘째 치고 저것만 잘 지켜도 사회에 나가 자기 몫은 충분히 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어른들도 위의 10가지를 다 지키기 힘들다. 나조차도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이니만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각을 한다거나 심한 장난을 쳤다거나 다양한 형태로 우리 반 10계명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학생들이 노력지를 쓰게 한다. 노력지 앞면에는 우리 반 10계명을 필사하고, 오늘 특히 내가 지키지 않고 부족했던 부분은 무엇이었으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하게 한다. 가치카드 중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배려가 부족했다든지 협력이 필요하다며 상황에 맞는 카드를 잘 골라낸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서 필사를 하고 자신의 입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성찰하는 시간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노력지 뒷면은‘여러분들 마음속에 깨진 틈이 생기지 않도록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지킵시다. 꾸준하게’라는 나의 당부와 함께‘디테일의 힘’이라는 이야기로 채운다.
디테일의 힘은 필립 짐바르도의‘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상기시킨다. 짐바르도는 골목에 새 승용차 한 대의 보닛을 열어 놓은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똑같은 승용차의 보닛을 열어 놓고 한쪽 유리창을 깬 상태로 내버려 두어 보았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0분도 지나지 않아 차 안에 쓰레기가 버려졌다. 몇 분 더 흐르자 자동차 배터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차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지저분한 낙서가 차를 뒤덮었으며 당장 폐차장에 끌고 가야 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깨진 유리창은 처음에는 매우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그 디테일을 놓치게 되면 차 전체가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 고영성・신영준(2017),『완벽한 공부법』, 483쪽
‘담임선생님이 최선경 선생님일시에 <디테일의 힘>을 주의 하세요. 필립 짐바르도와 친구사이가 될 겁니다.’라는 조언을 후배들에게 남긴 학생이 있었다. 학생들이 필립 짐바르도라는 이름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2017년 학기말에 ‘우리 선생님 사용 설명서’만들기 활동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담임 반 아이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준비물이 없거나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것을 싫어하니까 수업시간에 꼭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남겼다. 그래도 내가 평소에 강조하던 개념들이 학생들에게 잘 전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디테일의 힘은 영화 <역린>에서 인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중용 23장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평소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 문구라서 여기에도 한 번 옮겨본다.
<역린의 중용 23장>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정성을 다 하면 변한다” 가 아닐까?
사람들은 항상 위대하고 고상한 일을 성취하기를 열망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작은 일들을 마치 그것들이 위대하고 고상한 일인 것처럼 해내는 것이다. 학생들이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쏟기를 바란다. 학생들이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를 소망한다.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내 주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도 결국은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런 자세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2019.02.20.) 중에서
학급경영에 대한 보다 자세한 실천 내용은 <중등 학급경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