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부자 Sep 27. 2022

첫 마라톤 참가 후기 - 5km

2022. 9. 25. 광명역 평화마라톤

나는 평소에 달리기를 잘 못하고, 5km를 달리는 건 살면서 처음이니, 이 기회에 달리기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주변 지인들에게 들어 알고만 있었던 달리기 연습 어플 '런데이'를 설치하고, 9월 초부터 매주 2~3회씩 런데이가 안내하는 대로 달리기 연습을 해왔다.


내가 런데이에서 고른 훈련법은 초보자용 8주 과정이, 마라톤 참가 전까지 10번이나 연습을 했음에도 2분 30초씩 5회(총 12분 30초)를 인터벌로(중간에 2분 걷는다) 달리는 정도밖에 이르지 못했다. 과연 이런 정도의 연습으로 5km를 완주할 수 있을까, 며칠 전부터 중얼거리며 긴장하는 나에게 남편은 "마라톤 대회에서 5km는 누구나 가볍게 맛보기용으로 참가해보라고 둔 코스다. 연습 없이 갔다가 아이쿠 이게 아니네 하는 건 10km부터고, 5km는 그냥 부담 갖지 말고 안 되면 그냥 걸어라"라고 답답해했다. 나는 웬만하면 걷지 않고 느리게라도 계속 달리고 싶은데, 자기가 어릴 때 10km 대회에 참가한 적 있다고 5km를 아주 물로 보는 것 같아 남편 말에 빈정이 좀 상했는데, 대회장에 가보니 남편 말이 맞았다. 5km는 대회가 아닌 축제 한마당 느낌이었다.


일단 참가자들엄청 많았다. 사전에 참가자 명단을 미리 볼 수 있었는데, 나와 동생 이름 사이에 7~8명이 있었다. 우리 성씨가 흔한 성씨도 아니고, 내 이름 중간 글자인 'ㅅ'과 동생 이름 중간 글자인 'ㅇ' 사이에 8명이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대회장에 가보니 사람이 진짜 바글바글했다. 켠에 동호회 부스도 있었는데, 죽 늘어선 부스가 끝이 안보였다. 광명시에 달리기 동호회가 이렇게 많았다니,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달리기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많다니, 신선한 깨달음이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다들 즐거워 보였다.


5km는 참가자도 굉장히 각양각색이었다. 부모와 함께 나 미취학 아동도 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세 명도 눈에 띄었고, 초등학교 고학년들은 여기저기 꽤 많았다. 동년배 친구들끼리 참가한 젊은이들, 가족 단위로 참가한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 쌍둥이 유모차를 밀고 달리던 젊은 아빠 등등 정말 다채로운 사람들이 있었고, 달리기 직전의 긴장 어린 흥분이 여기저기서 느껴져서 정말 지역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참가자들의 옷차림도 각양각색이었는데, 러닝화 아닌 구두같은 운동화를 신은 아주머니도 계셨고(그런 신발로 중반 이후 내가 추월할 때까지 나보다 앞서 달리셨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두 분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마라톤용 민소매 상의를 입고 나란히 달리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첫 달리기 대회 참가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언가를 혼자 할 때보다 다른 이들과 함께 할 때 훨씬 더 흥이 나고 힘이 난다는 것이다. 5, 4, 3, 2, 1을 함께 외치고 다같이 와르르 출발해서 첫 오르막 구간을 힘겹게 달려나갈 때, 옆에서 함께 힘겹게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힘이 될 줄 몰랐다.

달리던 중 벌써 반환점을 돌아 마주오던 선두주자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냈는데, 그들을 응원하면서 내가 더 힘이 났다. 마주오던 선두주자들에게 감탄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던 그 때가 달리면서 가장 안힘들고 힘이 불끈 나던 순간이었다. 함께 참가한 동생과 페이스가 비슷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렸는데, 중반 이후 숨 고르기를 하려고 잠시 걸을 때 계속 걷고 싶다는 마음이 슬쩍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앞에서 느릿한 페이스로 한결같이 달리고 있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힘을 내서 다시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5km에는 어린이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가족과 함께 즐기려고 참가한 어린이들도 있었고(이런 아이들은 주로 걷다가 가끔 뛰는데, 달릴 때도 얼굴에 웃음이 서려 있다), 벌개진 얼굴로 달리기에 진심이던 어린이들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중간에 걷든 내내 달리든 목표 거리까지 완주하는 경험을 하면 자아효능감이 뿜뿜 솟게 될 것 같았다. 나도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했더라면 삶의 어딘가가 조금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도 했고, 8살 우리 아들도 같이 오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아들을 챙기면서 달릴 깜냥이 안되어 거절했던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보다 먼저 반환점을 돌아 마주오던 초등학교 저학년 같은 어린 여학생이 빨개진 얼굴로 입을 앙 다물고 꿋꿋 달리던 모습을 보았을 때는 너무 대견하고 감동적이어서 물이 핑 돌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큰일 아닌 데도 쉽게 감동받고 눈물이 난다)


5km 완주가 생각보다 엄청 어렵거나 힘들지 않고 축제에 참가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다시 5km 참가 기회가 온다면, 그 때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꼭 아이들과 함께 참가하리라 마음먹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