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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Nov 28. 2022

시골집에서의 시간

자전거와 라면

내 고향 우리 동네에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성친구가 두 명 더 있었다. 같은 해에 작은 시골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 세명. 내 의식과 기억이 존재하는 시점에 이미 우리는 친구였다.


일곱살이 되면서 나는 서울로, 친구 ㅈ은 부산으로 이사를 갔고, 친구 ㄱ은 시골에 남았다. 그렇게 뿔뿔히 헤어지는 듯 싶었지만 우리의 우정은 끈질겨서 초등학교 방학마다 시골에서 모여 방학 내내 한두달씩 매일을 함께 놀았다.


나는 시골집에 할머니와 함께 내려갔는데, 부모 없이 할머니와 시골에서 보내는 방학은 세 끼 밥을 제때 챙겨먹는 것 외에 부과된 의무가 전혀 없는 해방의 시간이었.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면 하루종일 놀다가 저녁밥을 먹을 때쯤 집에 들어오는 생활이었다. 숙제, 일기쓰기, 받아쓰기 연습, 책 읽기, 집안일 돕기, 동생들 돌보기 등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고, 하고 싶은 일만 는 자유 가득한 시간이었다. 혼자였다면 심심하거나 무료했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하루종일 같이 놀 친구가 두 명이나 있었다.

   

어쩌다보니 우리는 모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는데(딱히 배운 기억은 없다. 그냥 어느날 탈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친구 ㅈ은 시골동네에 거주하지 않았으므로 시골에는 우리 둘을 위한 자전거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 ㄱ의 자전거를 번갈아 타거나 자전거 없이 그냥 걸어다녔는데, 아홉살 때인가 ㅈ의 외갓집에 어른용 자전거가 하나 생겼고, 우리 외갓집에 아주 낡은 아동용 자전거가 하나 생겨, 우리 셋을 위한 자전거 세 대가 생겼다.


우리 외갓집에 있던 아주 낡은 검은색 자전거가 제일 작았고, 이건 키가 작은 ㄱ이 탔다.

ㅈ의 외갓집에 있던 핑크색 어른용 자전거가 제일 컸고, 이건 키가 큰 내가 탔다.

ㄱ이 갖고 있던 노랑색 자전거는 중간 크기였고, 이건 키가 중간인 ㅈ이 탔다.

이것이 내가 최초로 경험한 공유경제였다. 그래서 나는 공유경제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다가 읍내까지 진출했다.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 읍내에 나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전거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페달을 밟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겨웠다. 그리고 읍내 분식점에서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음식을 사먹는 경험을 해보았다. 하교길 노점에서 떡볶이나 떡꼬치를 사먹어본 적은 있어도, 어엿한 식당에 들어가서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 주문하고 직접 돈을 지불하는 것은 처음이라 굉장히 어색하고 쑥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처음 사먹은 음식이 바로 라면이다. 라면을 집에서는 자주 먹었지만, 밖에서 사먹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가정용 화력보다 훨씬 센 화력으로, 세 개를 한 냄비에 삶지 않고 냄비마다 한개씩 끓여, 면발이 꼬들꼬들하고 계란이 알맞게 들어간 라면 정말 맛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나눠타고, 처음 읍내에 나가, 처음 사먹는 라면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 영향인지 나는 아직도 자전거와 라면을 좋아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라면을 먹을 때면 항상 이 날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방학 내내 시골에서 동네 친구들과 하루종일 놀면서 자유롭 여유롭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은 나를 이루는 중요한 경험 자산이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남들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소소한 일상에서 즐겁게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뭔지 알고, 그런 시간을 더 늘리려 하며, 즐거움과 만족의 기준이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가끔씩이나마 시골에서 보내는 즐거움을 맛보여주려 한다. '몇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시간의 분절 없이, 탁 트인 공간에서, 조금은 심심하게, 한가롭게, 즐겁게 보내는 시간의 맛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골집과 마당에서 즐길 거리를 최대한 챙겨 시골에 다녀왔다. 장작불에 마쉬멜로우를 굽고, 불꽃놀이를 하고, 물풍선을 마당 벽에 던져 터뜨리고, 큰풍선으로 배구를 하고, 마당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치다가 벽에 널어놓은 이불에 물을 뿌려 할아버지에게 한소리 듣고, 그 물줄기가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골목길을 내려가보고, 할아버지 몰래 킬킬대며 다시 물장난을 시도하고, 동네를 산책하며 포켓몬을 잡던 시간들이 즐거운 억으로 남아 아이들에게 좋은 토대가 되길 바란다.


동네 산책길, 지리산을 바라보며 운동기구에서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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