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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부자 Feb 11. 2023

자녀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강남으로 이사를 시도하지 않는 이유

엊그제 독서모임을 하며 '어디서 살 것인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주 지역 선정의 주요 조건 중 하나가 교육이라는 점에 대부분 동의했다. 강남, 그 중에서도 대치동 인접 동네의 집값은 인근 학원들이 받쳐주고 있을 것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서 남편이 '지금이야말로 강남으로 들어갈 기회인 것 같다'는 말을 몇 번 했다. 대출을 받아 집을 갈아탈 기회라는 것이다. 몇 번은 못 들은 척하며 넘기고, 몇 번은 부정적인 의사를 정확하게 내비쳤다. 내가 남편에게 말한 이유는 '강남으로 이사를 가면, 집 사느라 생긴 대출금을 갚느라 일을 더 해야 하니 내가 집에 늦게 오게 될 것이고, 회사와의 거리가 훨씬 멀어지는 남편도 집에 늦게 올 것이며, 학원 뺑뺑이 도느라 아이들도 집에 늦게 올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서 이사를 가는데, 막상 가족들이 그 비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드는 상황이 싫다'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강남으로 가게 되면, 맹렬한 사교육 열풍에 휩쓸리지 않을 자신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부하느라 고생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나보다 더 편하게 유유자적 살면 좋겠다. 독서모임 중에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 엄마 아빠도 자녀(나)가 편하게 살기를 바랐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엄마 아빠는 시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은 언감생심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별한 기술이나 재산 없이 서울로 올라와 식당을 하고 막노동을 하며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고, 자녀들은 당신들보다 편하게 살길 바다. 자식들에게 특별히 많은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학습에 필요한 학원에 다녀야겠다고 말하면 없는 형편에도 두말없이 등록을 해주었다. 돈이 부족해서 피아노 학원 같은 예체능 학원은 1년이 안 되어 그만두게 했지만 학습과 관련된 학원은 엄마가 먼저 그만두라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엄마 아빠는 공부 외에 다른 편할 수 있는 길을 알지 못했으므로 내게 다른 길 알려줄 수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이상하고 나쁜 부모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모는 자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랄 것이다. 다만, '무엇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나의 집안은 대대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편안함'을 더 나은 삶으로 여긴다. 다행히 윗세대의 소망은 성공하여, 없는 집에 시집와서 육남매를 낳고 농사와 방앗간 일을 도우며 갖은 고생을 한 외할머니보다는 엄마가 고생을 덜 했고(엄마는 사남매만 낳았고, 농사일 대신 식당을 해서 적어도 퇴근이라는 게 존재했다), 엄마보다는 내가 덜 고생하고 있다(이남매만 낳았고, 육체노동 대신 정신노동을 했으며, 얼마 전부터 일을 줄였다).


원래 이 글의 제목을 '부모는 자녀가 더 편하게 살길 바란다'고 적었다가, 모든 부모가 편안함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에 제목을 수정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일찍 아이를 낳아 한평생 전업주부로 산 친구 어머니는 친구에게 "여자도 꼭 직업을 가져야 하고, 혼자 살 수 있으면 꼭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이 역시 자녀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당부였을 것이다.


얼마 전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전 장관 부부의 범죄사실 중 대부분은 자녀의 학교, 직업과 관련된 내용이다. 부모 모두 경제적으로 꽤나 여유가 있고, 명예로운 직업이었음에도, 자녀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과 의지가 잘못 발현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한동안 내 기준대로만 생각했을 때는 이런 범죄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나한테 그런 돈과 지위가 있었다면, 나는 애들에게 힘들고 고생스 공부해서 의사나 법조인 되라고 하지 않고 그냥 건물 관리하면서 월세 수입으로 편하게 살라고 할 것 같은데, 왜 부모도 고생하고 애들도 고생시킬까.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생각했다. 재벌가에서 자식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온갖 편법과 위법을 자행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굳이 자식에게 무겁고 힘든 짐(경영자의 자리)을 물려주려고 저렇게 애를 썼을까. 나였다면 정당하게 주식을 상속이나 증여하고, 주주로서 배당금 받으며 "너는 나보다 자유롭고 편하게 살아라"라고 했을 것 같은데. 이 말을 들은 남편은 "그런 (편안함을 위주로 두는)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돈과 지위를 가질 수 없어"라 뼈를 때렸다. 런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준으로 삼는 어떤 부분에서 자녀가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길 바랐던 것 같다.  


어떤 부모들에게는 더 나은 삶의 지표가 비교우위일 것이다. 남편 쪽에 약간 그런 경향이 있다. 벌, 집의 입지, 자동차 등 상징을 중시하는 것이 그런 경향을 드러다. 그리고 시부모님께도 동일한 가치관이 종종 드러난. 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든, 자신이 기준으로 삼는 그 부분에서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면, 나부터(부모부터)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며, 자녀는 부모를 거울처럼 비추면서 부모의 생각을 먹고 자라니까. 그래서 앞으로 가열차게 더 편안함을 추구해볼 생각이다. 내 아이들이 나보다 더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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