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었던 따뜻한 소설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일부 차용한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밥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요리하는 과정이 즐겁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는 늘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고, 아이들이 자꾸나를 찾거나 서로 다투거나, 그도 아니면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늘어서 있어서, 요리하는 과정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요리나 집안일은 그저 빠르게 해치워야 하는 과제였다.
최근에는 일을 줄이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요리하는 과정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좀 더 생기면서 요리하는 과정에 조금 더 정성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과정을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에, 화려한 결과물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멋진 결과물을 추구하면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이라, 지금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에서 충분한 만족을 느끼고 있다.
어제는 계란찜과 소불고기를 만들어 보았다.
계란찜은 약간의 육수가 필요한데, 이제까지는 집에 있는 오뚜기 국시장국을 맹물에 희석해서 육수로 썼다. 어제는 평소보다 조금 더 여유가 생겨서, 집에 있던 건표고버섯과 다시마를 따뜻한 물에 불려 육수를 냈다. 당연히 국시장국으로만 육수를 낼 때보다 계란찜이 훨씬 풍성한 맛이었다. 계란찜을 좋아하는 둘째 딸이 곧바로 평소와 다른 맛을 알아차렸고, 앞으로 계란찜을 자주 해달라고 했다. 스스로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요리하고 있지만, 내가 들인 소박한 정성을 타인이 알아차려주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불고기 양념은 몇 년 전부터 직접 만들고 있다. 간장, 다진 마늘, 간 양파, 올리고당 4가지 재료면 충분하다. "요리는 간만 맞으면 된다"는 요리천재 친정 엄마 말에 따라 간을 맞추는 것에 집중하고(고기 100g에 간장 1.2스푼이라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나머지 양념(마늘, 양파, 올리고당)은 그날 기분과 취향에 따라 '적당히' 넣는다. 먹기 1시간 전에만 양념해도 충분히 양념이 잘 배기 때문에, 바쁜 날에도 후다닥 준비해서 요리하기 좋은 메뉴다. 계란찜 육수로 사용한 표고버섯을 채 썰어 불고기와 함께 볶았더니, 고기를 덜 먹고 야채를 더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불고기를 볶을 때 양배추, 호박 등 집에 있는 야채를 함께 볶는다. 고기 섭취를 조금 줄이기로 마음먹은 나를 위한 재료 추가다. (애들은 아무래도 야채를 싫어한다. 나도 어릴 때 야채를 싫어했다.)
내 입맛에 맞는 소박한 요리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것은 일상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내가 좌우할 수 없는 불확실한 요인이나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내가 가진 것만으로 나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든다.
또 시골에서 태어나 삼시 세 끼를 강조하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가,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소박한 한 끼를 먹이면 내가 할 일을 어느 정도 완수했다는 기분이 들면서 자아효능감이 솟으며 스스로와 아이들에게 더 너그러워진다.
앞으로도 요리하는 과정에 정성을 아주 약간 더하고, 소박한 결과물에 만족하며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다.
덧) 요리를 직접 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설거지'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지난 끼니로 인한 설거지가 쌓여 있으면, 그래서 요리를 시작하기 위해서 설거지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면 무~조건 요리가 하기 싫어진다. 활활 타오르던 요리 열정도 설거지 앞에서는 얼음처럼 차게 식는다. 그래서 되도록 설거지 거리가 많이 나오지 않도록 조리도구와 접시 사용을 간소화하고, 식사 직후 설거지는 최대한 바로 하려고 노력한다. (식후에 바로 설거지하는 것은 진짜 너무 귀찮지만 미뤄도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니까 미래의 나를 위해서 그냥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