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독서모임의 5월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였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을 꽤 좋아하여 우리 집 작은 책장에는 그의 책이 대여섯 권이나 꽂혀 있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유대인인 작가가 무신론자라는 것에 일단 놀랐고(유대인은 당연히 유대교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지와 편견에 죄송), 같은 무신론자로서 작가가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종교의 유용한 면을 다양한 측면에서 관찰하는 것이 건전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책을 소장해 왔지만, 알랭 드 보통의 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재독을 계속 미루다가 이번에 독서모임 책으로 정하고 나서 모처럼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경험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책인데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매번 달라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고민이 달라지면, 내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도 달라지나 보다.
이번에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마음에 들어온 표현은
'보다 진지하게 자신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질문',
'우리의 영혼에 관해서 가장 진지한 질문',
'우리의 영혼을 가장 괴롭히거나 매료시키는 테마'라는 대목이었다.
책에 피상적인 질문의 예시로 언급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 다닙니까" 같은 류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스몰 토크의 주제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든, 꽤 자주 보는 동네 이웃이든,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해야 이야기가 겉돌지 않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지 잘 모르겠을 때가 많아서 아쉬웠다.
이 책에는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질문'의 예시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들고 있다. "후회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신을 깊게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는 질문인 것은 맞지만, 오 이건 이웃과 친구에게 건네기에는 너무 무거운 질문이다.
그래서 독서모임 발제로 "진지하게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질문이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회원들로부터 좋은 질문들을 수집했다.
우리 독서모임 회원들이 생각해 낸 좋은 질문은 아래와 같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요즘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소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최근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지?
최근에 감동받은 일은 무엇인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가?
정말 참기 힘든 타인의 행동은 무엇인가?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기 전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나같이 다 좋은 질문이다. 알랭 드 보통이 예시로 든 무겁디 무거운 질문들과 달리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가볍게 던져볼 수 있는 좋은 질문들이다.
내가 생각한 '좋은 질문'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였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어떤 것을 행할 때 가장 행복한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언제 행복한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로 정했다.
이 질문을 생각해내고 나서, 나는 무얼 할 때 행복한지 생각을 해보았다. 답은 의외로 꽤 빨리 나왔고, 나온 답도 의외였다. 나는 걸을 때 가장 행복하다.
걷고 있노라면,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기쁘다는 마음이 든다. 운 좋게도 사지가 멀쩡하고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서 이렇게 편히 걸어다닌다는 것에 그냥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가끔 잠이 안 올 때는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계속 반복될 때가 있는데, 걸을 때는 머릿속 생각이 맴돌거나 정체되지 않고 내 발걸음을 따라 흘러가고 순환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걷고 있을 때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다. 브런치 글감을 제일 많이 떠올릴 때도 걷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더 자주 많이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날 독서모임을 하기 위해 편도 40분 거리를 걸어서 모임 장소에 갔고, 같은 거리를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날씨가 너무 좋았던 5월 어느 날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임을 하기 위해 걷는 아침은 참으로 행복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은 30분 넘게 걸어서 도서관에 갔다. 집에서부터 거리가 있는 도서관이라 평소에는 차나 버스를 타고 갔는데, 한 번 걸어가 보기로 한 것이다. 걸어서 가다 보니 차로 갈 때는 알 수 없었던 지름길을 발견했다. 덕분에 45분 정도 걸릴 거리가 35분으로 줄었다. 새로 발견한 지름길 주변에는 아담하고 깨끗한 맨발걷기길도 있었다. 길 시작점에 발 씻는 곳까지 마련된 제대로 된 맨발걷기길이다. 유레카! 자주 가던 도서관인데도 처음 가보는 새로운 길로 걸어가니까 마치 여행하는 것 같고, 설레고 좋았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에 대한 대답은 시간이 지나며 바뀔 수 있고,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금 나는 걸을 때 가장 행복하니까, 가능한 자주 오래 걸어보려 한다.
여러분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가 아니라,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 천천히 한 번 생각해보고,
자신에게 그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