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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물로 마음 전하기

시간부자의 소박한 호사

by 시간부자

원래 나의 신조는 '안 주고 안 받기'였다.

선물을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같은 부담을 상대에게 주기 싫어서 선물하는 것을 꺼렸다. 여행을 가도 웬만하면 기념품이나 선물을 사 오지 않았다. 주변 사람이 여행지에서 선물을 사 오지 않아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누가 여행 기념 선물을 주면 '여행 가는내가 뭐 보태준 것도 아닌데 왜 내게 선물을? 다음에 나도 뭔가 사 와야 하나? 아 조금 부담스럽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

미니멀 라이프도 한몫했다.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마음에 딱 는 것도 아닌 물건을 선물로 받으면, 버릴 수도 없고 영 처치 곤란이었다. 나는 그런 곤란한 짐을 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로 선물하기를 더 자제했다.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 합리적인 이유로 선물에 인색했던 는 최근 들어 꽤 달라졌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날 때면, 작은 것이라도 꼭 선물을 챙겨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겨울에 만났던 독서모임 친구들에게는 핫팩과 쪽지를,

밥 사준다고 불러준 전 직장 선배에게는 콤부차 한 팩을,

청첩장을 건네준 후배에게는 무화과잼 한 병을,

자주 못 만나는 좋아하는 언니들에게는 립밤을,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에게는 생강진액 한 병을,

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들에게는 홍삼엑기스 한 팩을,

가끔 만나는 대학 후배에게는 읽기 좋은 책을 선물했다.


근래의 나는 여유 시간을 늘어난 대신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값비싼 선물을 할 수는 없었다. 약속 며칠 전에 미리 주문한 선물도 있지만, 집에 대량구매 해놓은 것 중에 아직 뜯지 않는 것을 준비해서 간 적도 있고, 선물로 들어온 것 중에서 일부를 가지고 간 적도 있다.


미리 준비해 간 선물을 받은 나의 지인들은 물건의 가격이나 종류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기뻐하며 감동했다. 그들이 감동한 지점은 '내가 약속에 나오기 전에 미리 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떠올리며 선물을 준비해 온 내 마음에 기뻐한 것이다.


가장 최근에 준비한 선물 - 내가 먹는 것 중에 좋은 것은 선물로도 좋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주는 기쁨'이었다. 별로 단치 않은 선물이라도 상대방이 감동하고 기뻐하면 나는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고 행복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뿌듯함마저 들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내가 오해했었다.

선물하는 사람은 '내가 이걸 줬으니, 다음에는 상대방이 뭔가를 되돌려주겠지?라고 기대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선물에 대한 보답은 '그걸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고, 그걸로 충분했다. 그다음 같은 건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언제 뭘 줬는지도 잊어버린다. 그저 그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이 오갈 뿐이다.


정신없이 일하던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가는 것만으로도 허덕였다. 모처럼 누가 밥을 사준다고 해도, 그보다는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초대가 그렇게 감사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누가 만나자고 하면 그저 반갑고 감사하다. 반가운 만남을 앞두고 미리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의 여유는 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여유 시간이 늘어난 덕분이다.


이제 나는 기꺼이 주고, 기쁘게 받는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약속이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미리 준비한 선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전해보기를 권한다. 틀림없이 주는 당신이 받는 사람 이상의 기쁨을 얻을 것이다.

* 취향을 크게 타는 물건이나 책 종류보다는 먹는 것이나 써서 없어지는 것 - 핫팩, 포스트잇, 수첩, 핸드크림 등 - 이 무난하다는 팁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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