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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08. 2022

<사랑에 관하여>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가난해서 구걸까지 해야 하는 부자(父子)의 이야기인 <>은 8년 하고 3개월 산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니까 비극적인 동시에 쓴웃음을 짓게 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굴을 엉뚱하게 상상하던 아이는 순전히 배고픔 때문에 그걸 집어삼키고 옆에서 구걸도 못하고 아이만 지켜보다가 후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비극적 상황이 더 절절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진창>은 팜므파탈인 수산나 모이세예브나에게 홀리듯 빠져든 두 사촌형제의 이야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산나를 찾는 알렉산드르 그리고리예비치 소콜스키와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크류코프의 태도를 통해서 인간이 가진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구세프>는 주인공이 군인으로 차출되어 간 뒤 병이 들어서 전역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집으로 가는 배 위에서 죽어가는 구세프는 가족의 모습을 환영으로 보며 위안을 얻는다.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구세프와는 달리 파벨 이바니치는 죽음의 책임이 위에 있는 자들의 책임이라고 비판하는 ‘지체 높은 분’이다. 이 단편의 특이한 점은 구세프가 죽어 바다에 버려진 뒤의 모습도 덤덤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검은 수사>는 환영에 시달리는 정신병자 코브린의 이야기다. 그를 키워준 은인인 예고르 세묘니치의 딸인 타냐와 함께 지내다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그의 정신병은 결혼생활을 비극으로 이끈다. 코브린의 이야기는 정신병이 창의적 활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어떤 천재들은 어쩌면 정신병자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병을 고치는 게 옳은지 그대로 놔두는 게 맞는지, 정신병을 앓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과연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로실드의 바이올린>은 장의사인 야코프 이바노프가 평생 고생만 했던 아내가 죽고 나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이야기다. 아내 미르파에게 항상 함부로 대하기만 했는데 막상 그녀가 죽으려고 하니 두려움이 앞서서 병원에 데리고 가지만 결국 아내는 죽고 만다. 이후 자신도 급속도로 쇠약해지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140쪽. “도대체 왜 사람들은 서로서로 편안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못하는 걸까? 그로 인한 손해가 이렇게 큰데도 말이다! 얼마나 무서운 손실인가! 증오와 미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엄청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 깨달음 덕분에 그동안 업신여기던 유대인 로실드에게 자신이 아끼던 바이올린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로실드는 그 바이올린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를 하면서 야코프의 마음을 전한다.


   <상자 속의 사나이>는 “온갖 종류의 위반이나 일탈, 규칙 파괴 때문에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지켜야 하는 사람이라서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옭아매는 사람이다. 벨리코프는 결국 죽어서 관에 누워서야 기뻐하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다. 체호프는 단순히 벨리코프의 죽음만 그리는 게 아니라, 그의 죽음 이후에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이 단편을 좀 더 생각하도록 만든다. “사실 벨리코프를 장사 지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전히 상자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산딸기>는 이반 이바니치가 동행인 부르킨과 함께 알료힌의 집에 머무르면서 그 둘에게 자기 동생인 니콜라이 이바니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다. 니콜라이는 도시를 싫어해서 시골에 집을 갖고 산딸기를 키우는 것이 꿈이다. 그런 꿈을 위해서 돈 많은 과부랑 결혼하고 그 여자가 죽자마자 영지를 산다. 그곳에서 키운 산딸기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이반은 “진리의 어둠보다는 우리를 고양시키는 기만이 더 소중”(181쪽)하다는 푸쉬킨의 말을 떠올린다. 문제는 이반의 말을 듣는 부르킨과 알료힌의 태도다. 그들은 이반이 말하고자 하는 이상에 관한 이야기에 전혀 흥미가 없다.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자신의 비루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우아한 사람들이나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일뿐이다. 


   <사랑에 관하여>는 알료힌이라는 화이트 칼라의 남자가 지방재판소장인 루가노비치의 아내, 안나 알렉세예브나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다. 알료힌은 안나를 사랑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괴로워하는데, 그녀가 떠나야 할 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체호프는 사랑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랑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선행이나 악행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이 단편과 조응하는 것 같은 유명한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불륜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이루어가는 연인의 이야기다. 안나는 사랑에 빠지면서 도덕적인 고민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투신하고, 구로프는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인 줄 알지 못하다가 마침내 깨닫게 되는 인물이다. 


   구조가 복잡하고 의미를 캐내야 하는 소설들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체호프의 단편집이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어떤 단편은 조금 지루하기도 했던 것이, 인상적인 사건이 거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한 인생에 관해 이모저모 생각해볼 주제들은 많이 던져주고 있는데, 그것마저 식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무래도 그동안 화려한 소설들을 많이 접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좀 더 생각할 수 있었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 타인의 시각은 대체로 언제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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