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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14. 2022

<남자가 된다는 것>

무엇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니콜 크라우스가 이 소설집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자기 민족과 기원에 대한 성찰에 한계를 모르고 다가갔던 작가는 이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곳에서 어떤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깊고 좁게 파고 들어갔던 세계로부터 빠져나와서 작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소설집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소설집은 자신의 기원과 여성성 혹은 남성성, 전통적 가족의 모습까지 모두 해체해서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재정립해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자신의 기원이라는 것은 작가에게 유대인으로 규정되는 어떤 민족적 특성도 있겠지만 <정원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종족 본능, 즉 “자연의 목을 비틀어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그런 본능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적 강자들에게 묵종하는 개인과 그 개인에게 묵종하는 개인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삶에 대해 섣부른 가치 판단은 보류한 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옥상의 주샤>와 <최후의 나날>에서는 유대인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해체를 시도한다. 브로드만이 죽음을 넘어가보고 와서 선택하는 것은 손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고, 보통의 랍비와는 어딘가 달라 보이는 젊은 랍비와 첫 경험을 통해 노아 역시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을 벗어버리고 더 넓은 곳, 신비로운 곳을 향해 가려고 한다. 


  <나는 잠들었지만 내 심장은 깨어있다>의 주인공은 아버지라는 기원을 넘어서려고 한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낯선 이에게 익숙해지는 것, 그 사실 자체까지도 잊는 것은 기원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확장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스위스>와 <미래의 응급 사태>, <아무르>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더 집중하는 이야기다. 소라야를 통해서 여성이 돌파하고 싶은 것, 한계와 나약함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여성성의 한계는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미래의 응급 사태>의 주인공은 빅토르와 안정적으로 보이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재난 상황과 폴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 각성을 한다. 하지만 그 각성은 빅토르가 열망하는 중세적 상태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인지하고, 나아가 새로 태어날 종족을 기다리는 방향으로 향한다. <아무르>의 주인공 소피가 한 선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건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이성적이면서 의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삶과 시작과 끝이 아무런 관련이 없더라는, 그 단순하고도 오래된 부조리”와 같이 하나의 거대한 우연일 뿐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소피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깨달음에 이른다. 아마도 필연으로 느꼈다면 그런 선택은 어려웠을 것이다. 


    <남편>과 <남자가 된다는 것>은 여성성과 남성성 뿐 아니라 전통적 가족의 모습을 해체하고 선물처럼 등장하는 외부자가 오히려 우리 삶을 확장하는 의미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특히 표제작인 <남자가 된다는 것>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세대마다 혼란을 일으키는 그 개념, 남자가 된다는 것, 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런 것들이 동등하다거나, 다르지만 동등하다거나, 전혀 동등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지”와 같은 젠더의 문제를 비롯해서, 폴리아모리의 실험, 아들과 아버지까지 등장시켜서 유년과 노년의 삶 혹은 죽음까지 성찰하고 있다. 아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출생 순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장면까지 모두 섬세하게 배치하면서, 인간의 기원과 그 이후의 삶, 일생 모두를 아울러서, 작가가 말하고 있는 “인생은 아주 다양한 층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에 대해 독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설집을 덮고 나면 소리내어 말할 필요가 없는 고요한 감동이 내면에 흘러가는 게 느껴진다. 작가는 어딘가 도달해 있다, 그곳이 어딘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그곳을 우리는 알고 싶지 않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각자의 자리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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