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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29. 2022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공포소설이 보여주는 노포의 맛

   공포소설은 대중적 장르가 아니다. 공포라는 심리에 대한 저항이 대중적인 장르로 가기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언뜻 보기에 공포소설은 공포 쪽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 소설 쪽의 가치를 폄하하기도 쉽다. 공포에 방점을 찍지 않고 봤을 때 얼마나 문학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꽤 훌륭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읽는 동안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가 책을 덮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설로도 괜찮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독자의 심리를 끌고 가는 묘사가 탁월하다는 것을 먼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랜돌프 카터의 진술>은 공포의 대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워런의 비명소리만으로도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대상에 대해 상상하게 하는 문학적 기법을 잘 사용하고 있다. 소설은 직접 진술하기보다는 간접적인 보여주기를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는 것이 더 탁월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이런 부분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에리히 잔의 연주>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선율을 들을 수 없으므로 상상력에 의존해야 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비올라 음색에 대해서 상상하면서 화자의 공포에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조금씩 증폭되어 가는 묘사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화자에게 몰입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에리히 잔이 살았던 거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분명히 내가 체험했지만 그 체험이 실재했는지 확신할 수 없고 그런 불확실성이 공포의 여운을 더욱 길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체를 되살리는 허버트 웨스트>는 불멸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잘 비틀어서 만들어낸 수작이다. 우수한 두뇌를 가진 의사가 그가 가진 지식을 잘못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면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은 지금 현재도 유효한 이야기다. 허버트의 욕망은 광기에 가까운 것인데, 인간에게 불멸이라는 가치 자체가 광기에 가까운 주제이고(우리는 쉽게 진시황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주제에 천착하면 어떤 결말로 향하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단편에서 재미난 점은 허버트의 조력자인 화자인데, 그는 원치 않은 일을 하는 듯 하지만 끝까지 허버트의 곁에 남는다. 그리고 허버트가 자신이 창조한 괴물들에게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목격자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허버트를 살해한 살인자일 수도 있다. 작가는 종종 이런 모호한 결말을 제시하곤 하는데, 광기 어린 몽상에 빠진 주인공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정확히 알 수 없는 진술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공포감을 배가시키게 된다.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주인공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짐작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벽 속의 쥐들>은 페스트를 연상하게 하는 끔찍한 쥐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혈통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작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기원, 신화와 연결된다. <아웃사이더>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인데, 자신의 기원도 알지 못한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에 유배되어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가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쩌면 괴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금단의 저택>은 뱀파이어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이지만 그 소재는 스쳐가는 것일 뿐, 저택 자체가 거대한 공포의 대상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젤리형 물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오감을 모두 불쾌하게 만드는 공포의 대상이 그곳에 숨어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남자>의 화자 역시 불길해 보이는 저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는 과거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괴이한 인물인데 알 수 없는 형체들에게 잡혀가고 화자는 역시나 그 남자가 데리고 간 저택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크툴루의 부름>은 신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대 종교, 이교도, 신비로운 제의 등은 우리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신비의 세계이며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기 때문이다. <냉기>는 이미 죽었지만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소품 같지만 다른 단편들과 연결되면서 풍성해질 수 있는 이야기다. <픽먼의 모델> 또한 도시 괴담을 연상하게 하는 강렬한 작품이다. 괴기스러운 장면을 그리는 화가들도 종종 있는데 그들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현관 앞에 있는 것>은 육체와 정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악마를 숭배하는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된다. 이 소설의 화자는 주인공인 에드워드의 파멸을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게 되는데 이 단편에서부터 화자와 주인공 간의 거리가 확실히 보이게 된다. <우주에서 온 색채>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온 공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난데없이 우주에서부터 떨어진 어떤 색깔이 한 집안을 모두 잠식해버리는 이야기는 가장 광범위한 공포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둠 속의 손님>은 주인공 로버트 블레이크가 “신화, 꿈, 공포, 미신에 전념했던 작가이자 화가”이다. 마치 러브크래프트의 분신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탐구, 교회라는 공간의 의미를 오히려 공포의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점, 마지막에 읊조리는 주문들이 모두 작가가 천착해온 주제들을 한 번에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러프크래프트의 대표작을 모아놨다는 이 소설집은 그가 보여주고 싶은 세계를 잘 들여다볼 수 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오감을 자극하는 공포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그런 감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오래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공포소설을 꺼려왔던 한 명의 독자를 설득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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