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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Nov 15. 2022

<가족이 아닌 사람>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

   엄혹한 시대였을 것이다. 작가는 떠돌기도 많이 떠돌았다. 어딘가에 정착하기에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 바깥의 혼란스러움은 당연한 배경이었을 것이다. 전쟁 혹은 이념이 중요한 시대이기도 했다. 민중을 계몽을 해야 하기도 했고, 적국을 증오하기도 해야 했다. 지식인들은 이념에서 자유롭기 힘들었을 것이고 시대적 사명감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를 사는 사람이 전쟁을 주도하는 위정자나 시대적 모순을 고민하는 지식인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오히려 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살아간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개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제일 소중하다. 먹고사는 문제와 자식의 안위, 나의 존엄성이 제일 소중한 일이다. 바깥의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지만 내 삶이 침해되었을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대의명분과 당위성 같은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다. 


   소설가가 지식인이라면 아마도 대의명분이나 당위성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샤오홍은 지식인 이전에 한 사람 혹은 한 여인이었고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극적인 면을 만들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처럼 보이는 당대의 개인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나치게 감정 이입하지도 않는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삶이 휘둘리고 감정이 변하는 것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읽어도 당대의 한계에 갇힌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소설이 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손>, <광야의 외침>, <피란>, <산 아래>, <연화못> 정도가 주목할 만했는데, 나열한 단편들 모두 상징적 사물을 잘 활용하고 있고 인물의 심리가 미묘하게 변해가는 걸 잘 포착해서 그려내면서 그런 심리를 표현하는 비유법이 탁월하다. <손>에서는 집단 심리, 한 사람을 소외시키고 이상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광야의 외침>는 날아다니는 닭털로 표현한 아들의 행동, 아들의 웃음소리를 보글보글 끓는 물이라고 한 묘사 등 좋은 표현이 많은 단편이다. 천 아주머니와 천 아저씨의 심리 상태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강풍에 휩쓸린 가족의 모습을 통해 황량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배경과 이야기의 조화가 뛰어나다. <피란>은 허난성이라는 표리 부동한 인간의 모습을 피란 가는 상황에서 짐을 챙기는 모습을 통해서 잘 드러내고 있다. 재미난 소품이다. <산 아래>는 열 살 아이 린구냥과 몸이 불편한 어머니, 질투심 넘치는 왕야터우라는 인물의 성격을 아주 실감 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연화못>은 몸이 약한 샤오더우, 아들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있는 할아버지, 그들의 무지가 초래한 비극적인 결말을 섬세한 묘사로 잘 보여주고 있다. 배경인 연화못과 이야기가 잘 들어맞는 게, 연꽃의 꽃말은 청결, 신성, 배신이라고 한다. 


   중국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나마 읽은 것 중에는 사실주의를 벗어난 소설은 없었다. 여성 작가는 처음인 것 같다. 그것만으로 이 작가가 읽을 만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이 고르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뛰어난 작품이 있고, 그 작품 때문에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편이라도 마음에 남는 작품이 있는 단편집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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