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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Nov 30. 2022

<아노말리>

독서에 지친 사람에게 권해주는 책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묘사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소설이 하나의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머릿속에서 서사 장르가 이렇게 영상 장르와 가깝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노말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복제된 비행기가 나타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상악화의 상황에서 아주 잠깐 사라졌다가 3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 비행기는 3개월 전에 착륙했던 비행기와 그곳에 타고 있는 사람들까지 동일하다. 사본이 나타난 것이든 시뮬레이션된 상황이든 이유 불문하고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런 매력적인 상황 안에서 작가는 몇 가지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존재의 유무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암살자는 고민 없이 자신의 사본을 없애고, 존재에 관한 고민이 삶의 전부일 작가는 한 존재를 던져버리고, 엔터테인먼트 안에서 존재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은 음악가는 쌍둥이가 되어버린다. 사랑에 빠져 있거나 사랑에 버림받은 존재들의 반응은 또한 제각각이다. 이렇게 재밌는 상황과 다양한 인물들의 반응과 치밀한 작가의 상상력이 조화롭게 짜여서 완전한 소설이 되었다. 


   완결된 구조이고 잘 쓰인 소설이라서 우리는 충분히 쾌감을 느낀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것 같다. 재밌었다. 소설이라는 극장을 나오면서 그 감정이 지배적이다. 아마 빼어난 외모의 배우가 있었다면 그 배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하지만 내용에 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거나 생각할 것이 없다. 작가가 이미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걸 다 생각해놓고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똑똑한 작가에게 감사를! 그리고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한 잔 기울이면서 잊는다. 우리에게는 저장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를 봤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이질적인 존재의 경이로움이 압도적이었고 새로운 세계를 엿본 것 같았다. 그 세계는 오래 마음에 남아있었고 메시지가 선명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결국 아름다움 앞에서 존재는 한없이 약하게 흔들리는 것일까. 그것이 예술의 본질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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