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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Feb 04. 2023

<사피엔스>

역사학자의 상상력이 얼마나 재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

   20여 년 전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읽었을 때만 해도, 기존에 배우던 국수적, 구조적, 필연적 사관에서 벗어난 관점이 새롭고 놀라웠다. 토인비가 말하던 ‘도전과 응전’의 문명 개념과 창조적 소수자와 지배적 소수자의 개념 또한 재밌었는데, 역사를 하나의 살아있는 대상처럼 보면서 문명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서머벨의 축약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너무 방대한 저작에 전문 역사학자의 치밀한 예증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러고 나서 오래도록 나에게 역사는 이런저런 책 속에서 쪼개진 상태로 다가오는, 여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피엔스>를 읽고 보니, (이 책을 역사서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덮어두고) 역사를 이렇게 명징하고 쉽게 서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아주 반가웠다. 비록 같은 분야에 있는 학자들에게는 무수한 비판의 여지를 주고 있겠지만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게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므로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비롯해서 연구가 필요한 특정 분야의 학문이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공유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도 말하고 있듯, 현재 역사를 다루는 일에는 과학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학문이 서로 만나고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정도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뜻 픽션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책은 사피엔스가 가진 고유한 영역인 상상력으로 버무려서 재미를 갖춘, 거시적 역사의 대중화에 성공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저자가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녹여낸 이 책은 역사학자들이 좀처럼 던지지 않는 추상적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과연 인간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행복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혹은 인간의 역사적 과정 혹은 발전은 나의 행복에 의미가 있는가, 라고. 


   그에 대한 나의 어설픈 대답은, 적어도 인간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인간적 특징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된 것이 나의 행복에 어느 정도는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미 도래하고 있는 AI의 시대를 전전긍긍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해온 것처럼 종의 획일화와 영속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사피엔스 종의 소멸이 오고 다른 종이 출현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굉장히 큰 위안처럼 다가온다. (다가올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현재를 좀 더 즐길 마음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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