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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Feb 06. 2023

<디 아워스>

버지니아 울프를 지금의 숨결로 생생히 만나고 싶을 때

   <댈러웨이 부인>을 읽어야겠다. 괜찮은 책을 읽다 보면 더 괜찮은 책이 종종 뿌리채소를 캐듯 따라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도 그랬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댈러웨이 부인>이 따라 나온 게 아니라 <댈러웨이 부인>의 패러디이자 상호텍스트성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댈러웨이 부인>이 먼저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디 아워스>를 읽고 있는 독자에게는 전후 관계가 중요하지 않고, 두 소설은 서로 호응하는 관계처럼 보인다. 


   어쩌면 울프가 어려운 독자에게 이 소설은 친절한 설명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울프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 독자가 읽기 어려운 의식의 흐름이라는 고도의 장치를 조금 덜어내고 <댈러웨이 부인>의 등장인물에 서사를 더 입혀서 변주하고 있는데, 독자에게는 이 소설이 훨씬 읽기 편하면서도 <댈러웨이 부인>에게 가닿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독자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평가가 갈리게 된다. 독립적으로 충분한 문학성을 획득했는지, 혹은 <댈러웨이 부인>에서 더 나아간 점은 있는지, <댈러웨이 부인>과의 변별점이 장점이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패러디 작품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본이 되는 텍스트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혹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서 모른 상태로 읽는다면 이 소설은 인물들에게 몰입하기가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물의 고통이나 갈등의 원인은 원-텍스트에 있고, 그걸 통해서 개연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만 따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면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내면의 갈등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패러디 소설이라는 특징을 명확히 부각하고, 영민한 작가가 그 한계마저 수용한다면, 원-텍스트까지 빛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원-텍스트가 가진 시대의 한계와 의식의 흐름 서술이라는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에서부터 이 소설을 보기 시작하면 무수한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울프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절망 속에서 캐낸 삶에 대한 사랑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러져가는 인생 속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 소설에 등장하는 세 인물들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지극히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먼저 울프의 자살 장면으로 시작한다.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강렬한 첫 장면은 작품 속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울프 부인의 이야기인데, 그 죽음의 의미는 다른 두 인물인 클러리서와 로라로 확장된다. 세 인물은 다른 시대에 있고 따로 떨어진 듯 보이지만 이렇게 울프와 죽음으로 인해 하나로 연결된다. 클러리서에게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작가 리처드는 죽음을 선택하고, 마치 리처드의 어머니처럼 보이기도 하는 로라는 죽음을 꿈꾸지만 그곳까지 도달하진 않는다. 인물의 내면과 심리로 짐작해 봤을 때 어쩌면 가장 죽음과 가까이 붙어 있던 로라는 삶을 선택하지만, 영예로운 상을 수상하는 시간을 목전에 둔 작가 리처드는 죽음으로 향한다. 언제나 삶과 붙어있는 죽음은 우리의 삶처럼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클러리서는 리처드를 위한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파티는 사실 일상적 삶을 한 번 끊어주는 순간, 기쁨과 삶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순간이면서 동시에 방종과 쾌락과 죽음에 맞닿은 순간이다. 파티가 열리지 않고 리처드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다시 일상이 이어지는 것, “알 수 없는 이유로 운 좋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파티”는 이렇게 일상이라는 시간의 힘이 삶의 힘이며 사랑이라는 걸 확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끝까지 살아남은 로라 브라운 부인도 지금 시간에 잡아먹히고 있지만, 담담하게 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한다. 


   “그렇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하고 클러리서는 생각한다. 우리는 파티를 열고, 외국에서 홀로 조용히 살기 위해 가족을 내팽개친다. 그리고 우리의 재능과 무조건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터무니없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꾸지 못할 책을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삶을 살아내고, 할 일을 하고, 그러고는 잠자리에 든다. 그토록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 그래도 우리가 도시를, 아침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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