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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pr 22. 2023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상큼하고 귀여운 SF

   소설을 읽는 경험만으로도 오랜만에 밝고 천진했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끔 그런 소설이 있다. 어렸던 한 때, 어떤 시절을 강하게 환기해 주는 것 말이다.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것 같은, 너무나도 기발한 그것이 마치 나에게만 찾아온 듯한 그런 느낌에 사로잡혔던 시기가 있었다. 혹시 내가 외계인과 교감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던 때도 있었다. 피곤해서 귀울림이 나는 것인데도 마치 외계의 교신처럼 느끼는 그런 것 말이다. 한나 렌은 그런 시절의 마음을 소환해 낸다. 정말 절묘하게 만든 제목, “매끄러운 세계”를 우리에게 펼쳐서 보여주면서 말이다. 


   때로는 그렇게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콘텐츠가 있다. 그 반짝임 때문에 이 소설집을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표제작에 나오는 “승각장애”라는 말부터 낯설고 재밌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보며 기대감을 더 높이게 되었다. 


“이 매끄러운 세계의 인간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어요.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든 그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죠.”(43) 


   우리가 SF를 통해서 기대하게 되는, 낯선 상상력을 통해 기존의 세계를 새롭게 들여다보고 다른 시각으로 깊이 사유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될까 하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한나 렌이 보여주는 것은 딱 거기까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음 소설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또 다른 재밌는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반짝임 하나로 만족해야 하는 소설도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개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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