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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ug 02. 20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잊혀가는 사랑의 기억을 찾아서

   사랑이라는 소재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끝없이 길어 올릴 수 있는 이야기감이다. 사랑이 가져오는 아름다움과 아픔, 상실, 분노, 충만함 등의 다양한 감정도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고, 인간이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겪는 여러 단계의 경험을 통해서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사랑은 정의하기에 따라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낳는다. 그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골라내는 것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사실 꾸며놓은 외피만 덜어내고 나면 더 이상 새로운 인물도, 새로운 사랑 이야기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이 책은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르셀의 성장 이야기에 가깝고, 특히나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고 사물과 풍경에 대해 남다르게 섬세한 태도를 갖고 있는 화자의 내면 묘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르셀이 할머니와 함께 떠난 발베크로의 여행도 호텔에 들어가기까지 보게 되는 사람들의 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 복장, 그것이 뜻하는 사회적 맥락 등등에 대한 묘사들을 읽다 보면, 이 책에서 여행 서사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역시나 떠나고 경험하고 돌아오는 전형적인 구조 안에 있지 않아서, 마르셀과 함께 발베크로 간 독자들은 서사의 즐거움은 일단 접어야 한다. 그 대신 돌아오는 극도의 문학적 쾌락은, 우리가 발베크의 호텔에 함께 앉아서 아주 느린 호흡으로 찬찬히 그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그 장면에 오래도록 멈춰있다는 것이다. 마치 엘스티르가 바다의 풍경 중 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림으로 남겨놓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실 사랑이란 감정도 그 순간을 박제하지 않으면 순수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므로 화자는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문장으로 박제해 놓는다. 아마도 그렇게 해놓지 않는다면 알베르틴에 대한 첫 감정도, 조금씩 변해가는 감정도 모두 사라져 버릴 뿐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상대를 오래 관찰하든가 혹은 자신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다 보면 사랑의 대상이 하나로 명확하게 좁혀지지 않는다는 걸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된다. 


   그래서 알베르틴에게도, 앙드레에게도, 지젤에게도 향하는 그 사랑이라는 감정들은 사실 소녀들 무리 전체를 향하고 있는 자기 환상에 가깝다. 그 환상의 감정은 사실 휴양지에 놀러 가서 일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들뜬 감정일 수도 있고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자기애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감정은 아마도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기로 짐작되는 현재의 마르셀이 가지고 있을 법한 감정이고, 우리는 사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그 감정을 모두 잊어버리게 마련이지만, 작가는 그 모든 것을 잊는 법이 없이 모두 다 이곳에 박제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도 작가는 충실하게, 어떤 시기의 사랑과 어느 곳의 풍경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시간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바로 이런 망각 덕분에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옛 존재를 되찾을 수 있고, 이 존재가 대했던 그대로의 사물과 마주하며 다시 괴로움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더 이상 현재의 우리가 아닌 예전의 그 존재이며, 그 존재는 이제 우리에게 무관심해진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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