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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ug 05. 2023

<여름>

이보다 더 여름인 소설은 없습니다

    어떤 책은 읽다 보면 그 계절을 흠뻑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계절 특유의 모습과 향기가 책 안에 가득해서 책 안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계절의 그 순간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계절의 이름 하나만을 제목으로 달고 있는 이 소설은, 하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내용만으로는 계절을 연상하기 힘들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는 풍경이나 장면 묘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부터 이 책은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고 새로움을 보여준다. 


   앨리 스미스라는 작가는 우리에게 여름을, 그 단어의 의미로부터 확장해서 나가도록 만들고 있다. “영단어 summer는 고대 영어 sumor에서 나왔고 그것은 원생 인도 유럽어 어근 sam에서 또한 나왔는데 ‘하나’와 ‘함께’ 둘 다를 의미한다.”(351) 


   소설이라는 장르가 언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예술을 맛보게 해 준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작가는 단어 자체에 주목하는 것에서부터 예술을 시작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가 여름이라는 단어와 만나서 얼마나 더 풍부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단어의 의미를 통해서 작가가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나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극한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마치 각각 떨어져 있던 아이 돌과 어른 돌이 만났을 때처럼, “이유도 모르게 신비로운 감명을 주는 그것 것.”(367)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그리고 로버트와 사샤, 대니얼과 아이리스, 그레이스의 에피소드들은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어려움과 고통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동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언어란, 샬럿이 말했다. 홀로 존재하는 게 아냐. 그들은 가족하고 비슷해. 끊임없이 서로에게 스며들지. 고립된 언어는 없어.”(481) 마치 언어처럼, 갈라져 있던 인물들은 서로 스며들어서, 하나와 함께가 동시에 같이 있는 것 같은 상태로 향한다. 


   이제 우리에게 여름은 더 이상 그냥 여름이 아니라 ‘대들보’인 여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여름 자체가 된다. 우리는 이 책보다 더 여름 같은 여름을 이제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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