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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ug 12. 2023

<별의 시간>

외면하고 있던 우리의 심연을 밝히는 희미한 별빛

   옛이야기를 보면,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고 했다. 누군가는 착한 사람이 죽어야 별이 된다고도 한다. 어쨌든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별을 보면서 행성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던 시절에는 그렇게 별이 죽은 영혼도 되고 신화적 인물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은 다만 허구의 세계, 상상의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공적인 불빛이 하나도 없던 그때는, 칠흑 같은 밤을 밝히던 별이 누군가의 반짝이는 영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 수월한 세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별을 보고 있는 그 순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내 존재가, 그 순간조차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는 것,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 또한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작가라는 숙명을 타고 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아마도 그 진실에 대해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년에 그가 쓴 책 <별의 시간>은 이런 제목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 스스로 헌사에서 밝히듯, “나는 이것을 내 삶 속에 사는 땅의 요정들, 난쟁이들, 공기의 요정들, 정령들에게 바친다.”(7)고 했고,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을 많이 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것조차 입증할 수 없으니 그저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울면서 믿으라.”(8)고 한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한 글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갖춘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대담한 선언이다.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자로 내세운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면서도 거리를 두고 있는 남자 작가다. 남자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인물은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다. 여기에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이야기는 없다. 


   평범한 인물인 마카베아가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갖기 시작했을 때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마카베아는 그 죽음의 순간에 알게 된다. “땅에 쓰러진 마카베아는 점점 더 마카베아가 되어가는 듯했다. 마치 자신에게 도달한 것처럼.”(140) 죽음의 순간, 자신을 버리게 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작가가 가장 욕망하는 순간이면서 진실에 가닿는 순간이다. 그 순간 마카베아는 “천각형의 별”(145)을 토하고, 정적 속으로 사라진다. 

   아주 오래전 우리가 알던 그 세계, 죽으면 별이 되었던 세계로. 


   잊힌 듯 했던 그 세계는 우리가 현실과 이성과 의식 아래로 계속 깊이 묻어버리던 그곳, 엘렌 식수가 말했던 “사다리의 세 칸”을 따라서 심연 속으로 내려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그런 세계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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