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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Sep 02. 2023

<속죄>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소설

  가끔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효용성의 측면에서 보면 다른 책들에게 밀리고 즐거움의 측면에서 보면 미디어에 밀리는, 이 소설이라는 장르가 필요한 이유를 단숨에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 어려움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소설을 만나서 일단 반가웠다. 


   상상력이 뛰어난 브라이어니는 자신의 재능을 글쓰기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시킨다. 무엇을 보든 자신의 상상으로 변형시키고 해석하는 행동은, 어쩌면 상상력이 남다른 십 대의 특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의 상상은 주로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상상이라서, 스스로의 모습을 너무 확대해서 보기도 하고 세상을 멋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기 안에 갇혀있는 상상은 상대를 찌르는 칼이 되기도 하고 타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몸뿐 아니라 정신의 성장, 즉 상상 세계의 성장도 함께 이루면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유아기적 상상 세계에서 머문 상태로 어른이 되면 자신뿐 아니라 타인 또한 지옥 속으로 끌어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 브라이어니의 상상은 아직 어리고 미숙한 것이었는데, 그녀의 상상이 망상에 가까워지는 바람에, 혹은 다른 비뚤어진 욕망과 섞이는 바람에,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열세 살의 브라이어니는 자신이 그런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 인물들에게도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상상력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롤라나 폴, 에밀리가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로비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보내고도 자신들의 삶을 멀쩡히 살아갔을 것이다. 


   상상의 힘에 발목이 잡힌 브라이어니는 그 힘을 통해 속죄를 하려고 한다. 아마도 소설을 쓰면서 로비와 세실리아의 마음속으로도 들어가 보았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그 고통과 불행을 같이 겪기도 했지만 동시에 상상의 힘으로 그 상황을 다시 구성하면서 살아갈 힘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돈과 명예를 얻게 된 것은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을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브라이어니는 평생 지고 가야 할 죄책감을 이겨낼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속죄라는 것은 사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끝까지 잘 살아남은 인물들은 악인 두 명과 브라이어니 자신이니까 말이다. 죽은 뒤의 불명예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브라이어니라는 인물이자 소설가를 통해서, 소설의 의미와 효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배울 수 있다. 게다가 500쪽이 넘는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서사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작가의 역량 또한 대단하다고 느끼게 된다. 작가가 거의 직접적으로 소설의 역할에 대해 소설 안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 부분이 거슬리지 않고 공감하게 되는 것 또한 살아있는 것 같은 인물의 힘과 이야기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도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한 몰이해가 불행을 불렀다. 그리고 오직 소설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두가 똑같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에 필요한 유일한 교훈이었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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