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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Sep 09. 2023

<기억의 빛>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린 기억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특히나 어떤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없을 때, 어떤 사람에 대해 한 가지 면만 알고 있을 때 알고 있던 기억은 나중에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흐릿해지거나 왜곡되곤 한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기억은 안다고 확신하고 있을 때 오히려 의심스러워지곤 한다. 


   그래서 원제가 Warlight인 이 책이 “기억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것은 적절해 보인다. 주인공 너새니얼이 화자인 이 소설은 “세월이 지난 지금 이 모든 걸 글로 적는 동안, 촛불 빛에 의지해 글을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50)라고 말할 정도로, 명확하지 않은 기억에 의지해서 글을 쓰고 있다. 그 기억은 기록보관소에서 사실을 확인한 경우도 있지만 화자가 상상한 경우도 많다. 


   그런 불확실한 기억에 매달려서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재구성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어쩌면 소설보다 더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보인다. 너새니얼이 시간을 함께 보냈던 누나 레이철을 비롯해서 나방이나 화살, 애그니스 등의 인물들에 관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화자가, 혹은 작가가 그 어렴풋하고 희미한 기억에 매달려서 새롭게 조망해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이제 무감해지고 만,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새롭게 보이는, 우리의 과거와 전쟁의 의미를 애써 발견하려고 하는 게 아니었을까. 

  "전쟁을 통과하며 거대한 건물들이 사라졌듯이,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을 잃었듯이. ... 우리가 부모님의 부재에도 그토록 무심한 듯했던 까닭은 무엇일까."(52)


   부모님이 떠나서 버림받은 기분으로 살아야 했던 피해자인 너새니얼이 있는 동시에 애그니스를 떠나서 가해가자 있는 상황과, 조국을 위해서는 희생하는 영웅이었던 어머니가 통째로 이름조차 없어진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는 잔혹한 스파이였던 의미에 관해서 말이다. 


   작가는 우리가 눈앞에 없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외면하고 무심했던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양이고, 생각했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과거로 물러가지 않고, 어떤 상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물지 않고, 모든 것이 열린 채로 쓰라리게 존재하고, 모든 것이 영구히 공존하는 ‘콜라주’ 속에 있다…….”(276) 


   작가가 발견한 의미는 우리에게도 적잖은 울림을 준다. 우리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소설의 방식도 마치 ‘콜라주’처럼 보여서 형식과 의미가 일치하는 것도 의도한 듯 보인다. 


   다만, 마지막에 덧붙인 듯 보이는 화살과 애그니스의 모습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애쓴 나머지 오히려 덧칠을 많이 한 그림처럼 보이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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