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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Sep 16. 2023

<약속>

약속을 지키는 힘은 사랑일까요.

   아모르는 번개를 맞은 아이다. 그냥 맞은 것도 아니고, “마치 하나님이 너를 겨냥한 것 같았어”하고 말할 정도로 번개로 선택받은 아이다. 그 때문에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이 아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불꽃에 날아가 버린 새끼발가락 흉터를 만지면서 “언젠가는 내가 할 거야.”하고 다짐하는데, 그 다짐의 목적은 막연하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선택받은 인물의 다짐은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막연했던 다짐의 목적이 생기는 계기는 어머니 레이철의 죽음이다. 암에 걸린 레이철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보살펴준 흑인 가정부 살로메에게 보답하려고 살로메가 살고 있는 집을 주려고 한다. 죽기 전 유언으로 남편인 마니에게 약속을 받아내고, 그 약속을 아모르가 듣는 순간 막연했던 다짐의 목적이 생겨났다. 살로메에게 집을 준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 


    레이철이 죽고 난 뒤 아버지 마니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마니에게는 흑인에게 땅의 소유권을 넘긴다는 사실이 생각조차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니인 아스트리드나 오빠인 안톤이 지키는 것도 아니다. 그럼 누가 지키나. 우리에게는 선택받은 아이인 아모르가 있다. 다행인지 우연인지 엄마가 유언을 남기는 곳에 아모르가 있었고, 그 약속을 아모르도 들었다. 


    약속은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약속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아모르의 마음에 남고 평생 지키려고 노력했던 그 약속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 가족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것을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평생 함께 살면서 농장 일을 비롯해서 자신들의 대소사를 돌봐줬던 사람, 살로메가 그들과 동일한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해 볼 수 있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뉜다는 것이 문제다. 소설에서 그 사실을 보지 못하는 가족은 모두 죽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리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다.   


    “스와트 가문은 특이하거나 주목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맙소사, 그들의 모습은 옆 농장과 그 너머의 농장 가족들과 비슷하다. 그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평범한 백인 무리일 뿐이다. 만약에 당신이 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우리의 말소리는 다른 목소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모두가 같은 식으로 소리를 내고 이야기를 한다.”(367)


   결국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아모르가 나타났는지, 아모르와 같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번개를 맞았다는 것과 같은 특별한 사건, 죽었다 살아난 것과 같은 그런 사건이 있지 않는 한,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과 배경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작가는 어떤 가느다란 희망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희망에 기대지 않고는 다짐도 약속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까우면서도 가깝지 않다.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 나라를 하나로 묶고 있는 이상하고도 단순한 융합 중 하나다. 때때로 이어지고 간신히 연결된다.”(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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