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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21. 2023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여학생들이 한 번쯤 흠모했던 선생님의 아주 인간적 얼굴

   내게도 브로디 선생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었던 그 선생은 긴 생머리에 세련된 옷차림이었지만 나이는 젊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브로디 선생처럼 예술을 좋아해서 작은 쇼핑백 하나에도 디자인을 신경 써야 한다고 가르치곤 했다. 브로디 무리와 같은 것은 없었지만 명백하게 편애하는 아이들은 있었고 나도 그 중 하나여서 매사에 선생의 마음에 들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잘 씻지 않고 다니던 아이에게 모욕을 주면서 반 밖으로 내쫓는 걸 보는 순간 느끼던 당혹스러움도 언제나 함께 따라다녔다. 


   아이들에게 선생이라는 존재는 신과 비슷한 존재로 먼저 각인되는 것 같다.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벌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도 죄를 짓는 모순된 존재 말이다.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기 전에 각인되었던 우상과 같던 그 존재들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브로디 무리의 아이들 또한 평생 브로디 선생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다. 브로디 선생의 영향에 사로잡혀 있던 아이들이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은 단순히 그렇게 보기만은 어려운 다양한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 


   소설은 브로디 선생을 관찰해서 서술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그 시선의 중심축인 샌디의 몽상이 교차하고 있다. 브로디 선생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독자의 기대는 조금씩 무너지고, 샌디의 몽상이 커지면서 오히려 객관적 측면이 강화되어 간다. 샌디는 무리 안에 존재하면서 특별함과 우월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한정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한정된 무리끼리의 사랑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어서 무리 안에서는 자신들끼리 감정적 폭력을 행사하고 무리 바깥으로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행사한다. 어린 샌디의 사랑은 브로디 선생과 동일시하고 싶은 사랑이었겠지만, 신의 모순된 얼굴을 발견한 샌디는 점점 분리하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샌디가 브로디로 상징되는 인간의 내면을 분석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기 마음을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로이드 선생과 관계를 맺고 브로디 선생을 배신하는 자기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었던 마음은 또한 브로디 선생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심리학 저서를 쓰고 수녀원에 들어간 샌디는 이제 알 것이다. 브로디 선생을 향한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무리의 다른 아이들 중 가장 큰 통찰력을 갖고 있어서 더 큰 생채기를 겪으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 샌디의 마음을 아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독자인 나는 브로디 선생과 비슷했던 그 선생과 함께 했던 시간의 복잡한 마음을 떠올리면서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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