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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21. 2023

<모비 딕>

드라마 우영우보다 더 재밌다고 느낄 수도 있는 소설

   인간은 땅 위에 터 잡고 살아가기 때문에 고래잡이배를 타고 대양으로 나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될 수 있다. 흙 한 줌 없이 끝없는 물 위에서 출렁이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수도 있는데, 고래까지 있다니. 고래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 대양과 고래, 둘 모두 지극히 이질적인 대상이라서 인간과의 거리가 무한하다. 


   멜빌조차도 이렇게 말한다. “고래에 대한 생각을 적는 것만으로도 나는 녹초가 된다. 학문을 총망라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태어날 고래와 인간과 마스토돈의 세대를 아우르며, 지상에 세워졌던 모든 제국의 흥망성쇠와 우주 전체와 변두리까지 뻗어나가는 그 광범위한 주제를 생각하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다. 거대하고 자유로운 주제가 가진 미덕은 이처럼 주변으로 폭넓게 확대된다는 데 있다.”(556)


   고래를 잡는 이 이야기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잔혹하고 오만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고 읽는다면, 당시에 꼭 필요했던 경뇌유를 얻으러 거친 바다로 나가 거대한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선원들의 이야기라서 매우 특별한 것이다. 문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독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땅 속에 묶여있는 게 아니라 광대한 물 위를 거침없이 떠도는 느낌이 든다. 


   원래 고래잡이의 목적은 경뇌유를 얻어서 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모비딕이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고래를 잡으러 가기 때문이다. 에이해브의 광기가 없었다면 이 책은 애초에 소설이 될 수 없었다. 대부분의 고래잡이들은 불구가 되더라도 고래에게 복수심을 품지 않는데 에이해브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모비딕에게 복수심을 품는다. 그 유난한 복수심은 모비딕이 특별한 고래여서일까 아니면 에이해브가 유별난 인간이라서일까. 


   사실 돈을 위해서 대상을 죽이는 것보다 복수심으로 대상을 죽이는 것이 더 인간적인 면이다. 인간은 돈만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추상적 영역을 채워야 살 수 있다. 그런데 돈을 위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은 끝까지 살아남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은 죽는다. 스타벅이 에이해브를 만나지 않았다면 살아남았을 것이다. 


   에이해브에게 모비딕은 어떤 의미였을까. 인간이 장악하기 힘든 자연의 힘이었을까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상징되는 신의 영역이었을까. 어떤 것이든 인간은 왜 끝없이 대결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슈메일이 어떤 인종과도 잘 어울리듯 인간도 어떤 종족과도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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