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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28. 2023

<맡겨진 소녀>

우리가 채우면서 의미를 발견해 나갈 수 있는 소설

   설명하지 않아도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알아채는 사람은 많다. 그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물론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소설에서는 소녀의 아빠가 그런 사람이다. 무디고 무심하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다. 악하지는 않지만 결코 좋은 사람도 아니다. 이런 사람이 옆에 많을수록 삶이 괴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자기 아이를 맡기면서도 킨셀라 아주머니의 호의를 고마워하기는커녕 떨어진 루바브를 주워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킨셀라 부부의 아픔을 겨냥하듯이 소녀에게 그곳에 있는 동안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떨어진 루바브를 말없이 주워주는 킨셀라 아저씨는 그런 행동에서부터 이미 아빠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의 화자인 소녀는 나이보다 조숙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보통의 아이들처럼 거리낌 없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요구를 드러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탓이기도 하고 조금은 낙관적이기도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당면한 문제를 비관하는 것은 쉽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어려운 법인데, 소녀는 집을 떠나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먼 친척집에 맡겨지면서도 좀 더 나은 상황을 상상한다. 


    낯선 집에서 어린 소녀가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킨셀라 부부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소녀는 따뜻한 일상을 보낸다. 소녀가 침대에 오줌을 싼 것을 두고 습한 방에서 재운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는 킨셀라 아주머니의 태도와 함께 식탁을 차리고 램프를 들고 가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말을 존중하는 킨셀라 아저씨의 태도는 소녀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소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삶의 모습이자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지만 이제 소녀는 그런 태도를 알게 되었다. 


    타인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아픔을 알아채고 그것에 반응하고 감싸주는 태도를 배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킨셀라 부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을 자신들의 삶으로 소녀에게 가르치고 있다. 부부에게 아이가 없음에도 “나한테 애가 없다고 해서 다른 집 애들 머리에 비가 떨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47)라고 말하는 건 아무나 하지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태도이다. 게다가 자기 아이를 잃으면서도 개를 죽이지 못하는 마음은 아무나 갖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킨셀라 아저씨가 소녀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은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라는 것이다. 쓸데없는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되는 방법과 그렇게 작은 동네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다. 아이는 이제 다양한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지 판단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짧고 쉽고 단정한 문장은 화자가 아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문장 간에 간격을 더 둘 수 있어서 독자들이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이 소설은 그런 이유 때문에 참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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