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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Oct 31. 20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의식 깊숙한 곳에 묻어둔 욕망

   마르셀이 기억하는 사랑의 실체는 무엇인가. 자기 사랑의 본질에 가닿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일까 혹은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과 같은 무한히 희생적인 것일까. 


   이 책에서 잃어버린 시간은 할머니와의 추억인데, 그것은 발베크에서 처음 사랑에 눈 뜬 꽃핀 소녀들의 무리들과 결부되어 있다. 할머니에게 보다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후회와 함께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발베크에 가자마자 충분히 인식하게 된다. 추억의 장소에 오기 전까지는 할머니에 대한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마르셀이 발베크에 도착해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처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싶었던 동성애의 모습들도 그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쳐가는 순간, 혹은 목격한 순간에도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다가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는 동성애의 의미는 그만큼 마르셀에게 강렬한 의미를 가진다. 할머니의 죽음만큼이나 충격으로 다가오는 의미라서 이 장에서 두 가지를 함께 배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프루스트에게 동성애는 설명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의미인데,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처음에 목격한 샤를뤼스의 모습을 자웅동체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게다가 나는 조금 전에 빌파리지 부인 댁에서 나오는 샤를뤼스 씨의 모습을 목격했을 때, 그가 왜 여자로 보였는지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여자였다! 단순히 기질이 여성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성다움을 이상으로 삼고 일상생활에서는 외관상으로만 다른 남성들과 닮은, 보기보다 모순되지 않은 존재들의 종족에 속했다. ... 저주를 받은 이 종족은 모든 피조물에게서 가장 큰 삶의 기쁨인 그들의 욕망이, 벌을 받아 마땅한 수치스럽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평생을 거짓말과 거짓 맹세 속에서 살아야 한다.”(39)


   그런데 한 번 동성애라는 사랑의 범주에 눈을 뜨고 나니,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 동성애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자신이 다시 사랑하고 싶었던 알베르틴마저 동성애에 빠져 있다는 것을 듣게 되면서 마르셀은 지독히 복잡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워한다. 


   “발베크로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한 이미지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과거의 것과 많이 달랐으며, 이번에 찾으러 온 이미지 역시 처음 보았던 안개 낀 풍경만큼이나 찬란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를 실망시킬 게 틀림없었다. 추억에 의해 선택된 이미지는 우리의 상상력으로 형성되고 현실로 파괴된 이미지만큼이나 그렇게 자의적이고 비좁고 포착하기 힘들다.”(273) “기억의 혼란에 마음의 간헐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280)

   그러면서 자신이 목격하거나 들어서 알게 된 사실로 보면 예상보다 많은 주변 인물들이 그런 감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 충격 속에 목격한 샤를뤼스와 알베르틴을 비롯해서 블로크의 여동생과 사촌 누이, 니심 베르나르와 보조 요리사, 마지막에 언급된 해변의 낯선 젊은 여자까지. 


   사실 <소돔과 고모라1>만으로는 마르셀에게 동성애가 어떤 식의 의미를 남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만 보면, 마치 할머니의 죽음과 같은 거대한 충격을 기억 속에서 묻어두었다가 대면했을 때의 휘몰아치는 감정처럼 동성애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알베르틴을 그렇게 미워했던 이유는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두고 싶었던, 그 부정하는 감정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면을 보여주는 자신을 보면 지독히 싫어지게 마련이니까.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이토록 치밀하고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지는 소설을 우리가 본 적이 있을까 싶다. 그것도 우리가 표현하기 힘들었던 대상과 현상,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을 그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프루스트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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