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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Nov 25. 2023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소설가들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소설가가 되었던 이유를 쓴 소설은 많다. 그것은 아마도 소설에 대한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일 것이다. 그 작가를 좋아한다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궁금해진다. 작가마다 제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숙명에 가까운 일인 경우도 있고 입신을 위한 경우도 있으며,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경우도 있지만 그 각각의 이유들을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문체로 알게 되니, 그런 책을 읽는 것도 작가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실 소설가가 쓰는 소설에 대한 소설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너무 쉽게 쓰인 소설처럼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맹 가리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꾹꾹 눌러쓴 흔적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주 절박한 이유라서이기도 했지만, 작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그 사랑의 크기에 압도당한 작가의 모습을 유머를 잃지 않은 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은 진지하거나 비극적이라서 오히려 유머를 담기가 훨씬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작가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와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이 꽤나 고차원적이라고 생각한다. 유머는 인간이 가장 높은 차원으로 삶을 견디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이렇게 말한 것처럼. 


   “본능적으로 나는 유머라는 것을 발견해 내었다.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 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말이다. 유머는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 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165)


   러시아에서 아들 하나만 데리고 프랑스로 이주해 온 어머니가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을 어려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이민자에다 유대인의 피를 가졌다면 더더욱. 그런 어머니가 이상이 드높고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들의 삶 또한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선택은 어머니의 의지를 무참히 꺾느냐 혹은 어머니와 함께 그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느냐 둘 중 하나인데 어느 하나도 괴롭지 않은 게 없다. 주인공은 후자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어릴 때부터 그의 천재성을 벼려온 어머니 덕분이다. 선택을 했다면 이제 위를 향해 가는 수밖에 없다. 전쟁의 위험조차도 그 의지는 꺾을 수가 없다. 죽음까지도 속이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 달려온 어머니가 있으니까. 


   어머니가 보여주는 숨 막힐 것 같은 강한 의지 덕분에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아 원하던 성취를 이룬다. 그러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아마도 숨이 막힐 것 같았겠지만 그의 기반이자 추동력이 된 것은 어머니가 심어준 의지뿐 아니라 쏟아부어준 엄청난 사랑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중심에도 타자에 대한 사랑이 자리 잡게 된다.


   “나의 자아 중심주의는 사실 어찌나 대단한 것인지 나는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들의 상처 속에서 아파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짐승들, 나아가선 식물들에게까지 확산된다.”(244) 


   바로 이런 점이 로맹 가리가 가진 힘이며, 이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그렇지만,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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