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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Nov 28. 20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미망에서 벗어나 자신을 발견하기

   마르셀이 처음 발베크에 방문했을 때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때는 불안에 떨면서 할머니를 찾아 호텔 벽에 노크를 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방문한 발베크에서 보여주는 마르셀의 모습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처음에는 호텔에서도 환대를 받는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낯설고 서걱거리는 인상이 강렬해서 혼자 산책을 많이 하곤 했던 그 마르셀이 이제는 완벽히 발베크의 사교계에 적응한 듯하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고 알베르틴이 곁에 있다. 


   마르셀을 둘러싼 많은 조건들이 이토록 변한 상태에서 심리 상태 또한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브리쇼 씨에게 그 고장의 지명들의 어원을 따져가면서 좀 더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켜 버렸고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므로 보다 순수하던 그 시절에 주목했던 대상들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에 몰입한다. 


   여기서 몰입하는 사랑은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 질베르트를 향한 사랑, 혹은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향한 사랑과 완전히 다르다. 이제 그의 사랑은 금기와 악덕의 사랑, 계산하는 사랑, 현실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었다. 

      

   “이 발베크라는 고장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력적인 일이었지만 나에 대한 그 영향력은 그만큼 감소했다. 다양한 경작지로의 토지 분할과 해안을 따라 확대된 파종이, 필연적으로 내가 이런저런 다양한 친구들을 방문하는 일에 여행의 형태를 부여했으나, 동시에 이 여행을 일련의 방문에 따르는 사교적 즐거움으로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 내가 그 측면에 매달려 있는 듯 보이는 지나치게 사교적인 삶의 골짜기에서, 한 무리의 친구들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저녁의 시적인 외침은 더 이상 부엉이나 개구리의 울음이 아닌, 크리크토씨의 “어떠세요?” 혹은 브리쇼의 “카이레”와 같은 인사말이었다. 그 분위기는 더 이상 고뇌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순전히 인간적인 발현으로 가득 차 쉽게 호흡할 수 있었고, 어쩌면 지나치게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거기서 취한 이점은 사물을 오로지 실질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는 것이었다. 알베르틴과의 결혼이 내게는 미친 짓으로 보였다.”(461)


   사실 알베르틴이 옆에 있는데도, 샤를뤼스씨와 모렐에게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의 태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쩐지 의아하게 느껴진다. 자기 사랑이 옆에 있는데 다른 사랑에 그렇게 주목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의아한 느낌은 결국 마르셀이 알베르틴과 결혼하지 않기로 한 대목에서 확신으로 변한다. 마르셀은 자신의 사랑에 스스로도 속고 있던 셈이다. 사교계의 많은 사람들이 샤를뤼스의 성향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척하지만 마르셀의 관심이 자꾸만 그쪽으로 향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내면에서 뚫고 나오는 그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알베르틴의 성향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 흔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그녀의 악덕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 막 떠오르려고 하는 태양의 빛이 주변의 사물을 변하게 하면서 한순간 그 빛에 따라 내 위치를 이동한 듯, 다시금 나의 고뇌를 보다 잔인하게 의식하도록 했다. 이처럼 아름답고도 고통스럽게 시작되는 아침을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488)


   알베르틴에 대한 이 각성은 스스로에 대한 각성이기도 하다. 분명히 마르셀의 위치는 이동했으며,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태양의 빛이 이동하는 걸 바꿀 수 없듯 그의 순수했던 시간 또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또한 아름답기도 한 일이다. 순수의 상태는 미망의 상태이기도 하므로, 진실을 보는 편이 오히려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는 마르셀이 돌연 어머니를 붙잡고 알베르틴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악덕이라고 믿었던 그 세계에 발을 딛느니 알베르틴을 구원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알베르틴을 구원해 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도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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